[책마을] 동서양 최고 문장가 공통점은 통념에 과감히 도전한 것
풍자 문학이 번성한 시대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한 가지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바로 ‘겉과 속이 다른 시대’라는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경제적으로 풍요롭거나 정치적으로 안정됐지만, 속을 들춰보면 부패와 타락이 횡행했다. 이런 사회에서는 정상적인 방식으로 세태를 비판하기 어렵고 우회적으로 그 세상의 민낯을 드러내야 한다. 조선 후기 실학자 박지원은 《호질》에서 호랑이를 내세워 조선시대 양반 사대부의 허상을 폭로했다. 일본 근대문학의 아버지 나쓰메 소세키는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서 고양이의 눈을 빌려 욕망과 폭력이 난무하는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사회를 비판했다. 《걸리버 여행기》에서 소인국을 통해 식민지를 착취하는 제국주의를 질타한 아일랜드 작가 조너선 스위프트도 있다.

역사학자 한정주는 《글쓰기 동서대전》에서 14~20세기 ‘글쓰기 역사’의 아홉 가지 주요 장면을 포착한다. 동서양 주요 문장가 39명을 인용하며 이들의 글이 탄생한 시대적 배경을 보여준다.

각양각색인 아홉 가지 장면을 아우르는 한 가지 교훈은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사회의 통념에 과감하게 도전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글의 구성과 논리, 문법, 형식, 수사 같은 것들은 부차적인 문제다. 독창적인 글을 쓰려면 개성 있고 자유롭게 생각하는 자세를 지녀야 한다.

저자는 이런 글쓰기 특징을 생명체의 진화에 비유한다. 진화는 돌연변이가 출현해 기존 종보다 더 뛰어난 생존력을 보일 때 이 돌연변이 개체 수가 늘어나며 진행된다. 이런 법칙은 글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당대 사람들에게 낯선 실험적이고 창조적인 글은 대개 기이하고 괴상한 글로 취급받아 배척당하기 일쑤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뒤에는 이런 글이 글쓰기의 영역을 무한히 확장하고 일거에 혁신한다. 나아가 사회를 바꾸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다.

저자는 “왕좌에서 쫓겨난 프랑스 루이 16세는 감옥에서 볼테르와 루소의 글을 보고 ‘이 두 사람이 프랑스를 파괴했다’고 말했다”며 “기이하고 참신한 글쓰기를 하며 결국 자신의 책이 세계를 지배할 것이라고 했던 볼테르의 예언이 적중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