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CEO & Issue focus] 가성비·개성…'B급 제품' 을 벤치마킹하라
장기 불황과 성장 정체로 소비자의 소비 행태가 달라지고 있다. 체면이나 외부 시선을 의식하는 소비보다 가성비를 내세워 합리적이면서 자기 지향적 소비를 추구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평상시 가성비에 대해 생각이 없는 소비자도 왠지 따라가야 할 것 같은 생각을 하게 될 정도로 가성비를 따지는 것이 익숙한 트렌드가 되고 있다.

이런 가성비 열풍으로 B급 제품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으로 변하고 있다. B급 제품이란 품질에는 하자가 없지만 정상적인 유통이 불가능한 상품을 말한다.

흠집이 있어 판매하기 어렵지만 리퍼(Refurbish의 준말로 재단장한 것을 의미)를 받은 가전제품, 먹는 데 지장은 없지만 유통기한이 임박해 매장에 진열하기 어려운 식료품 등이 이에 속한다. 한때 싸구려로 홀대 받던 B급 제품은 어느새 똑똑한 소비 활동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향후 B급 제품을 구매하는 소비자가 지금보다 많아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B급 제품은 가성비 외에 다양한 활용가치를 갖고 있다. 단순히 제품을 소유하기보다 다양한 경험에 가치를 두는 소비 성향을 충족시키는 데도 유리하다. 명품 브랜드는 아니지만 큰 하자가 없는 제품, 흥행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바탕 웃거나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영화 등 주류가 아니어도 소비 자체는 포기하지 않으면서 소소한 가치를 누리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B급 제품은 상대적으로 저렴하기 때문에 부담 없이 임의로 손볼 수 있다. 기존에 제조사가 제시하는 방식을 따르지 않고 제품을 자신의 기호나 취향에 맞게, 독특한 방법으로 가치소비가 가능하다. 한때 식품계에서 열풍을 일으킨 ‘짜파구리(짜파게티+너구리)’나 색다른 방법으로 서로 다른 제품을 섞어 나만의 화장품을 만드는 ‘레이어링 뷰티’를 예로 들 수 있다.

B급 제품은 때로 시장의 치열한 스펙경쟁에서 벗어나 전혀 시도되지 않은 궁극의 커스터마이징을 꾀하기도 한다. 폐방수천 등 버려지는 쓰레기를 모아 제작한 프라이탁 가방은 똑같은 디자인이 단 하나도 없다. 같은 소재, 같은 디자인의 방수천이라도 저마다 헌 정도, 묻은 때가 다르기 때문에 소비자가 갖게 될 가방은 유일무이한 자신의 가방이 되는 것이다.

폐차에서 떼어낸 안전벨트, 자전거 바퀴의 고무 튜브도 재료로 쓰이기 때문에 가방에서 화학제품 냄새가 나기도 하지만 가격은 50만원에 육박한다. 시장에서 한 번도 시도되지 않은 궁극의 차별화를 꾀할 경우 그 자체로 프리미엄을 인정받은 좋은 사례다.

기업 역시 B급 제품을 통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경험가치를 발굴할 수 있다. 저사양의 값싼 B급 제품은 비록 만듦새나 완성도가 떨어지지만 고객으로 하여금 부담 없이 새로운 기술이나 사용 방식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예를 들어 2014년 공개된 구글의 VR(가상현실) 카드보드를 떠올려보자. 비록 제품은 투박하지만 가상현실 기기에 대한 소비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이뿐만 아니라 저렴하기 때문에 고장 날 것에 대해 크게 걱정하지 않고 자주 사용할 수 있어 제품에 대한 개선점이나 아이디어를 더 적극적으로 제안할 수 있다. 그렇게 해서 얻어진 고객 피드백이 향후 출시될 제품에 대한 사용자의 기대와 니즈의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이제는 어떻게 제품을 활용해 최적의 경험가치를 만들어내는지 기업들이 소비자를 벤치마킹해야 할 때다. B급 제품에 대한 인식이 갈수록 좋아지면서 기업들은 소비자로부터 어떻게 제품을 사용하고 자신에 맞게 최적화하는지, 또 어떤 경험가치를 전파하고 공유하는지 파악해볼 수 있다. B급 제품이 많이 등장하고 판매되는 것은 소비자가 특정 제품을 오래 소유하기보다 짧더라도 많은 제품을 경험하는 전략을 택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업은 어떤 긍정적인 경험으로 소비자와의 관계를 지속시킬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유미연 < 선임연구원 myyoo@lgeri.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