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표류기] 그 많던 택배는 누가 다 옮겼을까
[편집자 주] ‘청년 표류기’는 세상과 사회라는 뭍에 무사히 닿기 위해 표류하는 우리네 청춘의 이야기입니다. 청년과 소통하기 위해 명함 대신 손을 내밀고, 넥타이 대신 신발 끈을 묶습니다.

여러분의 '청년 표류기'를 공유해주세요. 뉴스래빗 대표 메일이나 뉴스래빗 페이스북 메시지로 각자의 '표류기'를 보내주세요. 함께 고민하고, 해결하는 여정을 글-영상으로 남기겠습니다.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 12시간 밤샘 택배 상하차 현장 속으로

지난 16일 오후, 택배 상하차(화물차에 택배 싣고 내리기) 일당을 벌기 위해 서울 양재역 6번 출구로 향했다. 스무살 대학생부터 40대 주부까지 옅은 불안감이 밴 표정의 일용직 인력들이 즐비했다.

오후 4시 30분 팀장이라 불리는 이가 등장했다. 인력사무소 직원인 듯 했다. 신분증을 제시하니 관광버스에 타란다. 버스가 향한 곳은 충북 옥천의 CJ대한통운 허브 물류센터. 팔도에서 온 택배가 모이고, 다시 팔도로 흩어지는 중간 집합지다.

서울을 벗어나는 버스에서 초면인 일행에게 말을 걸었다.

“스무 살인데 곧 군대를 가요. 가기 전에 용돈 벌려고요." 파릇한 대학생인 그와 기자인 나는, 오늘 밤샘 택배 상하차 일용직이다. 그도, 나도 이 일이 처음이다. 네이버 등 포털에서 '택배 상하차'를 검색하면 "힘들다", "다시는 안한다" 등 '빡센' 노동 강도에 혀를 내두르는 후기가 쏟아진다. 그럼에도 열댓명이 옥천행 관광버스에 몸을 실었다. 일당 8만~10만원을 벌기 위한 '묻지마, 청년 표류기'.

“힘들다는 얘기는 많이 들었는데, 아직 젊으니깐 해볼만 할 것 같아요.” 그래도 그는 웃었다.

[청년 표류기] 그 많던 택배는 누가 다 옮겼을까


두어 시간 후 달린 버스가 멈춰 선 옥천 물류창고에는 전국에서 모인 사람들로 북새통이었다.

“처음 오신 분들, 여기로!” 물류센터의 직원으로 보이는 남성이 외쳤다. 안면 인식으로 신원 등록을 했다. 일용직 공지가 이어졌다.

"얼굴 다 떴으니깐 몰래 택배에 손 대면 징역삽니다." 택배 절도 시 처벌을 강조했다. 물건인 택배를 위한 공지였을 뿐 일용직 계약서 같은 근로자를 위한 설명은 없었다.

“이재근 씨~” 호명과 함께 작업 구역에 투입됐다. 새 빨간색 목장갑을 받았다. 바로 택배 상하차가 시작됐다. 옥천 도착부터 작업 시작까지 소요 시간은 단 20분. 속전속결이었다.

“처음이죠? 택배 바코드 찍으시고 쌓으세요. 줄 안맞춰서 쌓으면 무너져요.” 옆 라인에서 고정작업자라 불리는 20대 남성의 간결한 작업 설명이 이어졌다.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택배 상자가 밀려들기 시작했다. 바코드를 찍은 뒤, 5톤 트럭 컨테이너에 옮겼다. 찍고 밀고 쌓고, "아직까진 크게 어렵지 않다" 생각했다.
[청년 표류기] 그 많던 택배는 누가 다 옮겼을까
"30분부터 55분까지 밥먹고 오세요." 작업 30분만인 오후 7시 30분. 저녁을 먹였다. 위치를 묻고 물어 도착한 식당은 근로자로 붐볐다. 탕수육과 김치, 나물, 된장국을 담은 저녁은 무료였다. 하지만 주어진 식사 시간은 단 25분. 빠르게 밥을 해치우고 밤 8시 직전 다시 컨베이어 벨트 앞에 섰다. 작업의 재개를 알리는 신호는 따로 없었다. 하나 둘 돌아와 택배를 다시 쌓는 모습이 작업 신호였다.

작업 때 대화는 필요치 않았다. 컨베이어 벨트 앞에서 분류하는 여성이 택배를 무심하게 넘기면 가서 바코드를 찍고 컨테이너로 옮기고 쌓으면 그만이었다. 익숙지 않은 탓에 상자가 어긋나 공간이 남을 때면 작은 상자를 맞춰 넣었다. 조금씩 남는 틈은 봉투로 포장된 옷으로 채웠다. 어릴 적 즐겨했던 테트리스 게임 같았다. 다만 테트리스는 점점 점수가 오르지만 택배는 할 수록 체력이 떨어진다는 점은 달랐다.

쉬는 시간은 따로 정해져 있지 않았다. 밀려드는 택배 탓에 섣불리 자리를 비울 수도 없었다.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확인도 못했다. 컨테이너 한 개 분량에 가득 택배를 실었다. 막판 20kg의 쌀 포대가 쏟아져 들어왔다. 막연한 절망감이 들었다. 결국 사람 한 명 설 수 없을만큼 꽉 찬 컨테이너는 그대로 트럭과 함께 떠났다. 한 차를 완성했다는 성취감보다, 앞으로 들어올 트럭에 대한 막막함이 들기 시작했다. '시지프스'의 고통이 이해됐다.
[청년 표류기] 그 많던 택배는 누가 다 옮겼을까
“어이 삼촌, 이리 와 봐.” 컨베이어 벨트에 기대어 잠시 쉬는 기자에게 중년 직원이 소리쳤다.

“바로 앞에 CCTV 안 보여? 기대 있을 거면 옆에 안 보이는 곳에 가든가.” 컨베이어 벨트 앞 CCTV가 눈에 들어왔다. 택배 도난과 분실을 방지하기 위한 CCTV다. 하지만 잠시 쉬는 직원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장비이기도 한가 보다. 이후부터 눈치가 보여 물을 마실 때도 CCTV 사각지대에 숨었다.

다시 텅빈 택배차가 후진하며 자리를 잡았다. 사람은 학습을 통해 발전한다고 했던가. 처음보다 더 빠른 속도로 택배를 쌓았다. 선 분류 작업을 하는 여성보다 쌓는 속도가 빨라졌다. 택배를 조금씩 모아서 쌓는 여유도 부렸다. 허리 통증도 점점 무감각해졌다. 어느새 입에선 휘파람이 나왔다. 육체가 극한에 다다르면 이를 방어하기 위해 몸이 엔도르핀을 분비한다는 건 사실이었다.

흥은 오래가지 못했다. 걸려온 전화를 끊기 위해 꺼낸 휴대폰에 선명히 박힌 시간은 오후 11시 30분. 체감상 오전 2시는 됐을거라 생각했다.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일하다 중간에 도망가는 사람들이 있다고 들었다. 그 마음이 백 번 이해됐다.

"옥천만 아니면…" "화물 기사만 없으면…" 같은 생각이 머리를 맴돌았다.

작업장의 시계는 국방부의 시계에 버금갔다. 반복적인 작업은 시간 감각을 무디게 했다. 우둔한 반복성을 깨기 위해 옆 라인 고정작업자에게 다가갔다. 일한 지 얼마나 됐냐고 물었다.
1년 조금 넘었다고 했다. 힘들진 않냐고 하니 미소를 띄며 말했다.

“죽을 만큼 힘들 때도 있죠. 근데 그동안 이곳 사람들과 많이 친해졌어요. 힘든데 재밌어요. 되도록이면 매일 나와요.” 윗옷 아래 선명한 근육만큼이나 답변은 진솔했다. 계속 대화해보고 싶었지만 다시 택배가 밀려들었다. 제자리, 아니 내 작업 위치로 돌아왔다.

오전 2시 무렵. 두 번째 컨테이너를 떠나보내고 추가 작업자 한 명이 왔다. 함께 택배 바코드를 찍고, 가끔 택배도 쌓아 주었다. 고마운 친구였다.

“올해 스무 살이고 친구 따라 처음 왔어요.” 친구와 함께 바닷가 여행 경비를 모으기 위해 왔다고 했다. 다만 내일도 나오냐고 물으니 강하게 고개를 젓는다.

“아니요 (힘들어서) 오늘만 할래요. 바다 그냥 안 가고 말래요.” 그래도 그와 친구는 바다로 떠났을까. 그랬다면 꽤 오래 기억에 남는 여행이 될텐데 말이다.
[청년 표류기] 그 많던 택배는 누가 다 옮겼을까
“야! 이리로 와.”

또 반말이다. 한 직원이 우리 쪽을 향해 소리쳤다. 같이 있던 스무 살 말동무가 움찔했다. 불려간 그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다른 작업에 투입됐다. 다시 혼자라는 기분보다 직원의 반말이 신경에 거슬렸다. 12시간동안 반말 짓거리는 다반사였다. “네가 해라”, “그냥 올려”, “이거 빼라” 등 청년 일용직을 향한 반말과 명령조는 여기저기 다반사였다.

새벽 5시쯤 3대째, 마지막 트럭을 다 채웠다. 1000여개 택배상자와의 작별. 다음 근무자를 위해 컨테이너 벨트 주변에 남은 택배를 높게 쌓는게 오늘 작업 마무리였다. 퇴근까지 한 시간 남았다고 생각하니 몸은 무거워도 마음은 가벼웠다. 집에서 샤워하는 상상만으로도 설렜다.

기다리던 오전 6시. 하지만 아무도 작업장을 벗어나지 않았다. 10분, 20분 시간이 흐를수록 불안했다. "분명 오전 6시까지라 했는데, 잔업수당을 더 주려는 걸까." 벨트 주변과 바닥에 택배를 쌓아놓는 추가 작업이 1시간 가량, 아무런 설명 없이 더 이어졌다. 오전 7시, 작업이 끝났다. 다시 안면인식으로 퇴근 사인을 남겼다.
[청년 표류기] 그 많던 택배는 누가 다 옮겼을까
왜 1시간 더 일하는지, 잔업수당을 주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어제 기자를 싣고 온 버스에 다시 몸을 실었다.

“여러분, 오늘도 수고했어요. 내일 나오실 분, 손 들어주세요." 서울에서 본 팀장의 말에 몇몇 사람이 손을 들었다. 옆자리 앳된 청년 일행에게 또 올거냐고 물었다. 역시나들 고개를 저었다. 서울로 돌아오는 동안 일용직 소감을 묻고 싶었지만 더 이상 대화를 나눌 수는 없었다. 다들 진이 빠진 얼굴, 이내 고개를 꺾고 곯아떨어졌다.

버스에서 받은 일당 봉투에는 7만원이 들어있었다. 본래 남자 일당은 최소 8만원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7만원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1시간 잔업수당도 결국 없었다. 주머니에는 하룻밤새 다 낡아버린 목장갑이 들어있었다. 어제까지 새 제품이었던 목장갑이 지금 지친 내 신세 같았다.

올해 국내 전체 택배 배송물량은 20억건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매일 약 30만개 택배 상자가 청년 일용직 근로자 등의 손을 거쳐 전국 각지로 배달된다.

현행 최저임금 6030원, 12시간이면 7만2360원은 돼야 한다. 단 25분 공짜밥을 먹은 대신 쉬는 시간없이 12시간 30분 가량을 일한 하루 일당 7만원은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했다.
[청년 표류기] 그 많던 택배는 누가 다 옮겼을까
[청년 표류기] 그 많던 택배는 누가 다 옮겼을까
# 여러분의 '청년 표류기'를 공유해주세요. 이재근 기자 메일이나 뉴스래빗 페이스북 메시지로 각자의 '표류 상황'을 알려주세요. 함께 고민하고 해결하는 과정을 글·영상으로 남기겠습니다.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뉴스래빗'에서 더 많은 실험적 뉴스를 만나보세요 !.!

책임= 김민성, 연구= 이재근 한경닷컴 기자 rot0115@hankyung.com
뉴스래빗 페이스북 facebook.com/newslabit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newsla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