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재 칼럼] 브렉시트 이유 있다
영국의 EU 탈퇴는 유럽에 충격을 준다. 체코 덴마크 네덜란드가 이탈 대열의 다음 주자라는 분석도 나온다. 체코는 중부유럽의 중심이요, 덴마크와 네덜란드는 서구 가치의 핵심인 자유를 담보해온 국가다. 유럽은 더는 가치 동맹을 주장하기 어렵게 된다. 이탈리아 스페인 그리스도 탈퇴를 저울질해왔다. 돈을 내는 자, 떼어 먹는 자, 은밀히 착취하는 자, 헛소리만 내지르는 허풍선이들이 ‘eu(좋은)’라는 접두어로 동맹을 부르짖는 위선의 체제가 EU라는 비판도 있다.

정치 감각은 오랜 시행착오가 축적된 결과다. 영국인들의 정치 감각을 국외자가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지난 18일은 워털루 전쟁 201주년이었다. 총격사건이 터지면서 여론은 ‘잔류’로 급속히 기울었다. 워털루에서처럼 역사는 종종 사소한 우연적 사건의 영향을 받는다. 영국인이 보기에 프랑스와 독일은 한 수 아래다. 그런데 그들이 EU를 장악하고 있다!

브렉시트는 그럴듯한 찬반 논쟁을 포괄한다. EU가 전쟁을 막고 있다는 주장은 그럴 듯하다. 하지만 극단적이다. ‘평화의 국제기구’라는 것은 원래 칸트의 원대한 구상이다. 그러나 칸트가 평화의 전제로 언급한 자유는 지금 형체도 없다. 세계화는 이미 약탈을 거래로 바꾸는 중이다. 경제적 재앙이 닥칠 것이라는 주장도 그렇다. IMF 같은 국제기구들은 GDP가 2% 이상 삭감되고 노후연금도 못 받게 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는다. 그러나 이는 전망이 아니라 저주다.

언론들은 ‘잔류 동맹’ 측이다. 지난주의 사건을 기화로 일제히 포문을 열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EU 탈퇴를 막기 위한 은행가들의 투쟁이 고조되고 있다며 “런던의 직원 1만6000명을 대륙으로 옮기겠다”는 제임스 다이먼 JP모간 회장의 위협적 발언을 주요 기사로 올렸다. 사설 역시 ‘EU 탈퇴는 영국의 국제적 영향력을 감소시킬 것’이라는 겁나는 제목을 달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탈퇴를 비판하는 사설과 기사로 도배질해왔다. 탈퇴는 악마의 이미지로 언론에 투영된다.

EU 관료기구가 만들어내는 과도한 규제, 터무니 없는 이상론이 만들어내는 노동규칙의 비현실성 등 탈퇴 측 요점 정리는 보도 기회를 얻기 어렵다. EU 관료기구가 지난 10년간 40%나 비대해졌다는 것, 11조1500억원이 넘는, 그리고 프랑스 독일보다 많은 영국의 연간 순분담금 역시 국제적 관심을 모으는 데 실패했다. 노동시간에 대한 규제도 그렇고, 너무도 복잡한 안전 규정이 기업들에게 좌절감을 안기고 있다는 사실도 그렇다. EU 환경규제와 신재생에너지 규제는 새로운 산업의 탄생과 성장을 가로막아왔다. 지금 우리가 목도하는 EU의 경제적 부진은 ECB의 마이너스 금리가 아니라 대대적인 자유화 조치로 풀어야 한다는 주장도 허공의 메아리다. “영국을 통치하는 법들이 우리가 선출한 적이 없는 정치가들에 의해 결정되는 것에 반대하기 때문”이라는 마이클 고브 영국 법무장관의 ‘탈퇴’ 주장은 그런 면에서 경청할 만하다. 고브의 주장대로라면 EU는 회원국의 다양성을 격려하기보다는 규제하고 획일화하는 헛된 시도를 강화해왔다. “그들(EU)은 올리브 오일 판매용기의 최대 용량을 제멋대로 5L로 정했고, 고양이가 새를 쫓지 못하게 주택을 관목 수풀에서 5㎞ 떨어진 곳에 짓도록 하는 우스꽝스런 규제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고브는 매주 자기 책상으로 배달되는 EU 규제의 긴 목록을 언급하는 것으로 호소문을 작성했다.

사실 대부분 국제기구들은 필연적으로 관료주의를 쌓고 있다. 국민 없는 국제기구들일수록 더한 규제를 만들어내고 여기에 포퓰리즘이 가세하면 자유주의는 점차 숨통이 조여드는 것을 느낀다. 그 관료들은 또 얼마나 특권 계급인지. 통합이냐 분열이냐는 싸움 뒤에, 자유냐 규제냐의 또 하나의 전선이 있다는 점도 기억해 두는 것이 좋겠다.

정규재 주필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