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개의 벙커, 작년보다 4m나 좁아진 페어웨이 4곳, 강풍 그리고 장마. 오는 23일 개막하는 한국여자프로골프(KLGPA)투어 ‘비씨카드·한경레이디스컵 2016’(총상금 7억원)의 무대인 경기 안산시 대부도 아일랜드CC(파72·6490야드)의 특징이다. 지난 19일 막을 내린 기아자동차 제30회 한국여자오픈에서 수시로 바뀌는 바람에 고전한 선수들은 이번주 다시 서해안의 강풍에 맞서야 한다.

아일랜드CC에서 악조건을 뚫고 우승컵을 들어올리려면 거리보다 정확성이 요구된다. 실수를 줄여야 타수를 지킬 수 있다. 실수하더라도 피해를 최소화하는 노련함이 필요하다. 올 시즌 14개 대회에서 배출된 챔피언 10명의 기록을 바탕으로 이번 대회 ‘아일랜드 퀸’이 갖춰야 할 조건을 살펴봤다.
[비씨카드·한경 레이디스컵 2016] "장타보다 정타…페어웨이 잘 지켜야 아일랜드 퀸"
○거리보다 방향

해송과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아일랜드CC는 아름다운 만큼 치명적이다. 대회가 열리는 웨스트오션코스와 사우스오션코스에는 모두 54개의 벙커가 도사리고 있다. 방향과 거리를 정교하게 잡지 않으면 벙커가 공을 삼켜버릴 수 있다. 장타(長打)보다는 정타(正打)가 필요한 이유다. 특히 3번과 5번, 13번, 14번홀 등 4개홀은 작년보다 페어웨이 폭이 4m가량 좁아졌다. 가장 좁은 곳은 폭이 20m에 불과하다. 페어웨이 안착률과 그린 적중률을 높여야 승부를 걸 수 있다.

올 시즌 4승의 ‘장타여왕’ 박성현(23·넵스)은 그린 적중률 1위(80.22%)로 아이언샷에서 강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 페어웨이 적중률이 121위(69.81%)로 낮은 건 약점이다. 하지만 그는 지난주 한국여자오픈에서 강풍을 뚫고 준우승을 거뒀다. 바람과 난코스에 대한 공략법을 터득한 만큼 이번 대회에서도 우승을 기대해볼 만하다.

올 시즌 2승을 수확한 장수연(22·롯데)은 그린 적중률(2위)과 페어웨이 안착률(14위) 모두 안정적이다. 제주도에서 생애 첫 우승을 거둔 그는 섬에서 강한 ‘섬녀’다. 장수연은 지난해 이 대회에서 정희원(25·파인테크닉스), 하민송(20·롯데)과 함께 공동 2위에 올랐다. ‘아이언 퀸’ 이정민(24·비씨카드)과 지난해 신인왕 박지영(20·CJ오쇼핑)도 드라이브 비거리가 길고, 10번 중 8번은 페어웨이에 공을 올리는 정확성을 갖췄다. 올 시즌 우승 기록은 없지만 페어웨이 안착률 1~3위인 김지현(25·롯데) 최가람(24) 박결(20·NH투자증권)도 주목할 만한 선수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서 올 시즌 2승을 챙긴 디펜딩 챔피언 장하나(24·비씨카드)도 세계 최강자들 사이에서 그린 적중률 1위(80.09%), 평균 타수 2위(69.78타)를 기록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우승 ‘0순위’다.

○실수를 만회하라

장하나는 지난해 이 대회에서 최종합계 12언더파 276타로 우승했다. 맑은 날씨가 경기력 향상에 도움을 주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실수를 줄였기에 가능한 스코어였다. 그는 이 대회에서 86.11%의 그린 적중률을 기록했다. 여기에 높은 파세이브율(93.06%)로 타수를 지켰다. 그린에 샷을 올리지 못해도 끝내 파를 잡아냈다. 리커버리율이 80%였다.

이런 점을 감안했을 때 ‘달랏앳의 여왕’ 조정민(22·문영그룹)과 배선우(22·삼천리), 고진영(21·넵스) 등 세 명의 챔프가 눈길을 끈다. 세 명 모두 안정적인 경기 운영과 실수를 만회하는 노련함을 갖췄다. 조정민은 평균 퍼팅과 리커버리율이 KLPGA투어 선수 중 1위다. 벙커세이브율도 5위로, 올 시즌 우승 경험이 있는 선수 중 가장 높은 ‘위기 탈출의 달인’이다.

이어 배선우가 리커버리율 2위다. 고진영도 평균 타수와 평균 퍼팅, 리커버리율 모두 한 자릿수 순위를 기록하며 6경기 연속 ‘톱10’ 행진을 하고 있다.

○장마 시작…비바람에 적응하라

장마가 시작되면서 비바람이 부는 그린에 대한 적응 여부도 변수로 등장했다. 기상청에 따르면 이번 대회 기간 중 둘째날인 24일 비가 내릴 확률이 높다. 다른 날에는 비가 내리지 않더라도 구름이 많은 흐린 날이 예상된다. 지난주 장마 초입에 열린 한국여자오픈의 우승자 안시현(32·골든블루)은 높은 리커버리율(65.38%)과 함께 낮은 평균 퍼팅(29개)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비와 바람에 젖고 마르기를 반복하는 그린에서 스트로크 감각을 빨리 잡아야 한다는 얘기다.

체력 부담도 이겨내야 할 숙제다. 6월은 ‘섬과 바다의 달’이다. 선수들은 이달 초 제주에서 2주 연속 대회에 참가한 뒤 서해안으로 이동했다. 인천에서 강한 바닷바람을 뚫고 한국여자오픈을 마친 선수들에게 바다를 접한 아일랜드CC가 기다리고 있다. 체력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132명의 참가자 중 강한 체력과 정신력으로 무장한 선수가 우승권에 근접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