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얏나무 아래 갓 고쳐 쓴 옐런
미국 경제전문 채널 폭스비즈니스의 피터 반스 기자는 지난 15일 미 중앙은행(Fed) 기자회견장에서 재닛 옐런 Fed 의장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Fed는 그동안 대통령선거가 있는 해엔 금리정책을 바꾸는 데 민감해 했다. 오는 11월 대선까지 세 번의 회의가 남아 있다. 정치 일정이 금리 결정에 영향을 주는가.”

부드러운 표정으로 또박또박 대답하던 옐런 의장의 얼굴은 선거 얘기가 나오자 표나게 굳어졌다. 옐런 의장은 “우리는 정치 일정이 아니라 경제지표와 전망에만 집중하고 있다”며 “적절한 데이터가 나온다면 언제라도 자연스럽게 금리 인상에 나설 것”이라고 답했다. 답변은 짧았고, 표현은 단호했다.

왜 그랬을까. 반스 기자의 질문은 중앙은행의 정치적 중립성을 꼬집은 ‘뼈아픈’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배경은 이렇다. Fed는 이날 예상대로 금리 동결을 결정했다. 성명서에는 고용시장 개선 추세가 둔화됐다는 등 누구나 예상한 이유가 쓰여 있었다. 그러나 옐런 의장은 질의응답 과정에서 한참 더 나갔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국민투표 결과에 대한 우려와 생산성 둔화 등 불확실성을 얘기하면서 “균형금리가 상당히 낮게 유지되는, 경기 하방 압력이 당분간 사라지지 않는 상황이 ‘뉴노멀(새로운 경제질서)’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전에 없이 강한 표현으로 경기부양적 정책 기조를 유지하겠다고 말한 것이다.

이런 발언은 그의 연초 입장과 큰 차이를 보인다. 옐런 의장은 연초만 해도 금리 인상에 목말라했다. 저유가와 소비 부진 때문에 오르지 않는 물가만 어느 정도 받쳐주면 금리 인상을 서두른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뉘앙스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3월 들어 ‘금리인상 속도 조절’을 거론하더니 4월 이후 내부 ‘매파’ 위원들의 발언에도 점진적 금리인상론을 공식화했다. 이런 태도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의 백악관 비공개 미팅(4월11일)을 전후해 더욱 뚜렷해졌다.

옐런 의장의 정치적 성향이 문제가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4년 11월 중간선거 때는 선거 하루 전 오바마 대통령을 만나 공화당으로부터 집중포화를 받았다.

옐런 의장으로선 억울한 부분이 많을 것이다. 브렉시트뿐 아니라 고용시장에서의 적신호, 중국 경제 둔화라는 폭탄이 상존하는 상황에서 조심스러운 통화정책은 어찌 보면 당연할 수 있어서다. 워싱턴의 한 경제학자는 “중앙은행의 독립성은 말로 규정되는 게 아니다”며 “옐런의 설명되지 않는 행보는 그 자체가 더 큰 불확실성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워싱턴=박수진 특파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