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국가역량체계, 능력중심사회 앞당긴다
언젠가 모 분야 명장(名匠)으로부터 자기가 대학원에 입학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명장은 해당 분야에 15년 이상 종사하고 있는 사람 가운데 최고 기술력을 가졌다고 정부가 인정한 사람이다. 정부는 이들 명장에게 증서, 휘장과 명패, 장려금을 지급하고 각종 기능경기대회 심사위원, 산업현장교수 등으로 위촉한다. 명실상부한 해당분야의 최고 기술자인 것이다.

학력으로 치면 박사학위를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인 그는 왜 대학원 진학을 생각했을까. 얘기를 들어보니 고졸인 그는 학점은행제를 통해 대학 졸업장을 땄지만 석사학위를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사회에서는 명장의 실력보다 학위만 본다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업무 능력이 뛰어나지만 대졸자에게 승진에서 밀려 별 도움도 안 되는 대학에 다니는 고졸 입사자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대학졸업장이 있지만 특성화고나 마이스터고 졸업자보다 못한 입사자가 허다하다는 기업인들의 불만도 적지 않다.

이는 개인의 능력을 있는 그대로 평가·인정해 주는 틀이 미흡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직무능력을 평가하는 주요 기준은 학력이었다.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학력, 학위가 없으면 응당한 대우를 받지 못해왔다.

최근 들어 공기업을 중심으로 직무능력을 평가해 채용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으나, 민간영역을 포함한 사회전반에 정착되기에는 갈 길이 멀어 보인다. 학력을 보완하는 것으로 자격증이 있지만 산업현장에서 필요한 기술기능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소위 ‘장롱자격’인 경우가 허다하다.

이처럼 학력도 자격증도 능력중심사회로 나아가는 데에는 한계가 있는 만큼 개인이 다양한 경로를 통해 획득한 능력을 일정 기준에 의해 인정해주는 국가역량체계(NQF)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특성화고에서 용접을 전공하고 해당 분야에서 1~2년 근무한 뒤 용접기능사 자격을 따면 전문대 용접 관련 전공 졸업자와 능력이 같다고 공식적으로 인정해 주는 체계가 NQF의 요체다.

정부는 한국경영자총협회, 대한상공회의소, 한국노동조합총연맹,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등 관련 분야 이해관계자 및 전문가들과 함께 NQF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NQF가 제대로 구축돼 작동한다면 학력에 기반한 노동시장 인사관리 관행을 직무능력중심으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NQF가 작동하는 노동시장의 모습은 이렇게 그려볼 수 있다. 어린 시절부터 해외 유명 호텔의 조리장이 되는 것을 꿈꾸던 A는 국내에서 조리사 자격을 취득하는 등 노력하고 있었다. 때마침 NQF가 구축돼 국내 조리사 자격은 해당국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게 됐고, A는 국내에서 취득한 조리사 자격을 B국에서 인정받은 후 취업비자를 얻어 해당국의 레스토랑에서 일할 수 있게 됐다. 이후 A는 직업훈련을 통해 B국의 역량체계에 등록된 상급 조리사 자격을 얻어, B국의 유명한 호텔 조리장으로 일하며 꿈을 이룰 수 있게 됐다. 이것이 NQF가 그리는 세상이다.

현재 세계 155개국에서 NQF를 개발했거나 개발을 추진 중이다. 과잉학력과 불필요한 스펙쌓기 경쟁에서 벗어나 능력중심 사회를 구현하는 것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하지만 교육부나 고용노동부 등 일부 부처의 힘만으로는 어렵다. 국가적으로 역량을 모아야 한다. 대부분 선진국에서처럼 이를 체계적으로 추진할 기구도 마련해야 한다. 비용에 비해 효과적인 처방제로서 NQF 구축에 힘을 합칠 때다.

강순희 < 경기대 교수·노동경제학 soonhiekang@kg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