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중독의 시대…쾌락도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한 요리사가 초등학생 7명을 주방으로 불러들였다. ‘충격요법’으로 가공식품의 유해성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그는 닭 껍질과 물렁뼈, 기름 덩어리 등 요리에 쓰고 남은 온갖 찌꺼기를 모아 치킨 너겟 반죽으로 만들었다. 유화제와 발색제, 각종 조미료도 첨가된다는 말에 학생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하지만 잠깐이었다. 반죽을 튀겨내자 학생들은 너도나도 너겟을 먹겠다며 손을 들었다. 당황하는 요리사에게 답하는 이들의 설명은 간단했다. “맛있잖아요!”

2010년 영국 요리사 제이미 올리버가 학교 급식 개혁 운동 중 겪은 일이다. 비슷한 사례는 많다. 사람들은 유해성을 알면서도 담배를 계속 피우고, 비만을 걱정하면서도 물 대신 탄산음료를 마신다. 정서에 좋지 않다는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영화는 박스오피스 상위권을 차지한다. 일각에선 대중의 자기절제 노력이나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말 그런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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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리 S 크로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 현대사학과 교수와 로버트 N 프록터 스탠퍼드대 과학사학과 교수는 《우리를 중독시키는 것들에 대하여》에서 “과잉 섭취는 생물학적 문제지 개인의 성격적인 결함 때문이 아니다”며 “현대인들이 중독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강한 자극은 뇌신경전달물질 균형을 교란해 우리 몸이 그런 자극을 계속 원하게 한다. 저자들이 “사람들의 선택은 온전히 자유로운 것이 아니다”고 말하는 이유다. 문제는 인류의 생물학적 욕구와 자원의 희소성 사이의 균형이 무너지면서 생겼다. 과거엔 탐닉할 기회가 드물었지만 이제는 아니라는 얘기다.

저자들에 따르면 19세기 말 시작된 ‘포장된 쾌락의 혁명’이 현재 중독 상황의 바탕이 됐다. 기업은 감각적인 만족을 주는 것들을 응축해 용기에 담고, 대중은 이를 어디서든 값싸고 편리하게 즐길 수 있게 됐다.

포장은 사람들이 느끼는 감각의 강도와 범위에 큰 변화를 줬다. 예전엔 자연을 배회하다 산딸기나 벌집을 발견해야만 단맛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은 간편하게 과일보다 훨씬 단 초코바를 살 수 있다. 미지근한 물은 차가운 탄산음료로, 담뱃대는 편리한 종이 담배로 바뀌었다.

이런 상황은 사람의 감각 기대치를 점점 높여 중독을 만들어낸다. 자연과 사회에서 얻을 수 있는 상품화되지 않은 쾌락은 밋밋하고 따분한 것이 됐다. 초코바가 당근과 사과를 몰아낸 것이 대표적인 예다. 상품끼리도 감각 강도를 높여 경쟁한다. 초콜릿에는 땅콩과 누가가, 담배엔 향료와 화학물질이 첨가됐다. 영화는 점점 더 규모가 크고 화려한 폭발과 질주 장면을 보여준다.

포장의 광고가 사람들을 중독으로 이끌기도 한다. 저자들에 따르면 포장은 동질적인 제품에 차이가 있다는 환상을 주는 수단이다. 똑같은 초콜릿이 포장 디자인에 따라 연인 사이의 선물부터 아이용 간식, 부자의 기호품, 가난한 이를 위한 위안 등으로 변신하는 사례가 이를 보여준다.

저자들은 “포장의 혁명이 나쁜 결과를 낸 것만은 아니고 포장의 부작용을 기술이나 기업, 소비자 어느 한쪽 책임으로만 돌릴 순 없다”고 강조한다. 포장은 이전에 특권층만 누리던 감각의 만족을 많은 사람이 편리하게 누릴 수 있도록 했다.

쾌락의 과잉 소비가 주는 문제는 물론 많다. 사회는 자원낭비와 환경오염에 시달린다. 개인은 신체 또는 정신적 건강에 위협을 받기 일쑤다. 저자들은 “포장된 쾌락의 장단점을 정확히 보고 이를 넘어선 즐거움도 찾아봐야 한다”고 제안한다. 즉각적인 쾌락 대신 과정과 상황에서 얻는 만족을 추구하는 것이 첫 번째다. 극단적인 자극에 노출되는 것을 의도적으로 줄이는 식으로 감각을 재훈련할 수도 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