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벌써 네 번째 미래수석이다
지난 3월 방한한 존 홀드런 미국 대통령 과학보좌관 겸 백악관 과학기술정책실(OSTP) 실장이 생각난다. 홀드런 실장은 KAIST 강연에서 이런 말을 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은 과학기술을 통한 혁신에 강력한 의지를 지녔다는 점에서 매우 닮았다”고. 진짜 그런가.

1971년부터 하버드대 지구행성학과 교수로 재직하던 홀드런 실장이 지금의 자리로 온 것은 2009년이다. 무려 8년이 다 돼 간다. 한국에서 홀드런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청와대 미래전략수석은 어떤가. 그 사이 미래수석이 또 바뀌었다. 벌써 네 번째다. 대통령 임기가 3년 조금 지났으니 수석당 평균 1년 남짓 한 셈이다. 홀드런 실장은 이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오바마 과학보좌관은 8년째

영국 총리의 과학기술 고문 역할을 하는 수석과학자(chief scientist)도 4년 정도는 한다. 최근까지 호주 총리 수석과학자였던 이안 찹 교수만 해도 5년을 했다. 이리 말하면 혹자는 미래수석이 과학만 하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미래’라는 키워드로 한 번 검색해 볼까.

‘글로벌 트렌드(global trend)’는 미국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미래 이슈 리포트다. 작성처는 국가정보위원회(NIC). 크리스토퍼 코즘 NIC 수장은 오바마 대통령과 5년을 함께했다. 그 뒤를 이은 그레고리 트레버튼도 3년째를 맞았다. 바로 밑의 스테핀 카플란 부위원장은 2007년부터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글로벌 트렌드 2030’ 집필 책임자 매튜 버로만 해도 NIC에서 15년 이상 미래 연구를 지휘해온 인물이다.

작은 나라라고 다를 게 없다. 싱가포르 총리실 산하 미래전략센터를 보자. 이 센터 고문 피터 호는 1980년대부터 싱가포르의 미래지향적 의사결정을 지휘해온 인물이다. 1993년 의회에 미래위원회를 설치해 미래보고서를 작성하는 핀란드는 또 어떤가. 위원회 설치부터 지원 임무를 맡아온 폴라 티호넨 박사가 은퇴한 것은 불과 최근이다.

한국은 미래가 없다는 건가

비록 특수한 정치체제 아래에서였지만 1970년대 한국이 ‘공업구조 개편(지금의 산업구조 개편과 같은 의미)’을 시도한 시절에도 주목할 점은 있었다. 경공업에서 중화학공업(당시 한국엔 신산업)으로 전환할 때 밑그림을 그린 오원철 제2경제수석의 재직기간은 1971~1979년(정권이 막을 내릴 때까지)이었다. ‘중화학공업화 선언’과 동시에 등장한 ‘과학화 선언’을 적극 지원한 최형섭 과학기술처 장관의 재직기간도 1971~1978년(그가 퇴임을 청하지만 않았다면 그 역시 1979년까지 갔을 것이라는 후문)이었다. 산업과 과학은 이렇게 한 짝이었다. 신산업을 외치는 지금 뭔가 다가오는 게 있지 않은가.

현대원 신임 미래수석이 딱하다. 타이틀은 거창한데 아무도 그에게 미래를 묻지 않는다. 과학도 묻지 않는다. 오직 묻는 건 단통법(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 폐지 여부요, SK텔레콤-CJ헬로비전 합병 승인 가부 문제다. 아마 그는 이 이슈들과 씨름하다 시간을 다 보낼지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마저 든다.

지금 대한민국은 온통 구조조정 얘기뿐이다. 뭔가 희망이 보여야 구조조정도 할 텐데 어디에서도 그 이후를 말해주는 곳이 없다. 한국의 미래는 없다는 건가. 차라리 미래수석 같은 자리를 만들지나 말지.

안현실 논설·전문위원·경영과학박사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