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방자치단체의 방만한 대형 국제행사 유치에 제동을 건다. 법적 구속력이 있는 재정협약을 맺어 ‘총 사업비’ 등의 비용을 통제하고 이를 위반하는 지자체엔 재정 손실의 책임을 물을 계획이다. 지자체가 엄밀한 비용 추계 없이 독자적으로 대형 국제행사를 유치한 뒤 정부에 많게는 수천억원의 국고 지원을 요구하는 행태가 반복되고 있어서다.
'묻지마' 국제행사 유치 제동…정부-지자체, 재정협약 체결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16일 “일부 지자체의 방만한 대형 국제행사에 국민 세금이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식’으로 들어갔다”며 “이달 ‘국제행사지원 사업군에 대한 심층평가’ 결과를 공개하고 지자체의 무분별한 국제행사 추진을 억제하는 방안을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재부는 지자체가 올림픽 엑스포 등 대형 국제행사를 유치하기 전에 중앙정부와 협의하는 것을 의무화할 계획이다. 지자체와 ‘총 사업비’ ‘재원 조달 방안’ ‘시설 사후관리’ 등에 대한 협약을 맺고 이를 위반하는 지자체엔 재정 손실의 책임을 물을 예정이다.

예컨대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협의 과정에서 ‘총 사업비 1000억원, 국고 지원 100억원’으로 합의하면,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추가 지원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협약을 국민에게 공개하고 협약 변경 사항이 있을 때 지자체가 공시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지자체가 ‘국민 세금을 쓰고 있다’는 경각심을 갖게 하기 위해서다.

기재부의 이 같은 방침은 지자체의 대형 국제행사가 ‘세금 먹는 하마’라는 비난을 받을 정도로 방만하게 준비·운영됐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전라남도는 2006년 중앙정부의 재정 지원 없이 민간자본을 조달할 계획을 세우고 포뮬러원(F1)을 독자 유치했다. 민간자본 조달에 어려움을 겪자 2009년 경주장 건립 예산 880억원을 요구해 528억원을 배정받았다. 2014년 인천에서 개최된 아시안게임도 다르지 않았다.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당초 국고 지원액은 2651억원으로 책정됐지만 결국 5931억원이 투입됐다. 2011년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50억원→1154억원), 2015년 광주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843억원→2026억원) 등에도 국고가 1000억원 이상 추가로 들어갔다.

국고 지원을 받아 행사를 치르고 난 뒤에도 ‘빚더미’는 더 쌓여갔다. 전남의 F1 누적 적자는 1900억원에 달한다. 인천의 채무는 3조원 이상이다. ‘재정위기 주의단체’로 지정된 상태다.

전문가들은 ‘F1 지원 특별법’ ‘평창올림픽 지원 특별법’ 등 지역행사 지원 특별법을 제정하고 중앙정부에 국고 지원을 압박하는 일부 국회의원의 행태가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특별법엔 어김없이 중앙정부의 예비타당성 조사, 재정 투·융자 사업에 대한 심사를 생략할 수 있는 조항이 들어간다. 정부 관계자는 “지원 특별법 난립을 막을 방안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황정수/이승우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