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전력의 시장화
1980년 이전 영국의 역대 정권들은 전기산업을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자연 독점 시장으로 인식했다. 공공 부문에서 이 사업을 맡는 게 당연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1979년 취임한 마거릿 대처는 달랐다. 그는 전력사업도 철저히 시장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력 사업을 자유화하고 시장경쟁 체제를 도입했다. 그가 만든 전기법은 총리를 그만둔 다음해인 1981년부터 시행됐다.

전력 자유화 이후 무엇보다 가정과 기업의 단전 건수가 줄어들었다. 당시 요금 연체로 인한 가스 및 전력의 공급 중단은 영국의 매우 중요한 사회 문제였다. 단전 건수가 연간 7만건을 넘었다 한다. 하지만 전력 자유화를 시행한 뒤 다음해 2만건으로 줄어들었다. 1998년 이후는 400건에도 못 미쳤다. 영국이 단전의 공포에서 해방된 것이다. 전기 사업자들은 단전을 없애기 위해 가정마다 계량기를 설치하도록 했으며 연체 우려 가정을 직접 방문해 문제를 해결했다. 단전되면 그만큼 전력 기업이 손해였기 때문이었다. 물론 전기값도 싸졌다. 시장 메커니즘의 승리였다.

대처의 혁명은 곧 유럽 각국에 영향을 끼쳤다. 1990년대 후반 들어 유럽 각국에서 전력 자유화가 시작됐다. 특히 1998년 전기를 사고파는 것을 자유화한 독일에선 새로운 변화가 나타났다. 시골 마을사람들이 펀드를 만들고 은행 융자를 받아 풍력발전기를 돌리고 태양광 패널을 설치했다. 전기를 생산하고 판매하는 게 농촌의 주요 소득원이 됐다.

일본도 올해 4월 전력 소매사업을 자유화했다. 전력소매를 하겠다는 사업자가 300개가 넘는다고 한다. 소프트뱅크와 NTT 등 통신회사는 물론 유통업체 석유회사 등 다양한 업체들이 전기를 판매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하지만 5월 말 기준 전력회사를 바꾼 기업이나 개인은 전체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자유화 이후 10~20%가 사업자를 바꾼 프랑스, 독일과 사뭇 다른 풍토다.

정부가 한국전력이 독점해온 전력 판매시장을 민간에 개방키로 했다고 한다. KT와 SK텔레콤 등 통신업체는 물론 유통이나 에너지 관련 업체도 참여할 전망이다. 한국은 일본과 시장이 달라 일단 시장이 개방되면 다양한 형태의 전기 상품과 서비스가 나올 것 같다. 전기판매 대리점이나 전기 방문 판매원도 선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일부에선 일본처럼 대형 전력회사가 공급을 쥐고 있는 한 경쟁이 일어나기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한국의 전기시장이 어떻게 변할지 궁금하다.

오춘호 논설위원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