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87년 체제'의 비극
1987년 6월, 대학가와 시내는 민주화 열기로 연일 뜨거웠다. 필자는 그때 재수생이었고, 독재정권과 맞서 싸우는 친구들이 솔직히 부러웠다.

1987년 민주화의 결실로 탄생한 헌법, 이른바 ‘87년 체제’가 내년이면 만 30세가 된다. 하지만 헌법이 시대적 소명을 다했다는 평가가 도처에서 들려온다. 대통령단임제, 승자독식의 권력구조가 정치권으로 하여금 문제 해결보다 권력 독식을 위한 선거전에 ‘올인(all in)’하게 만든다는 비판이다.

사회·경제 구조가 과거보다 복잡해졌고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기대 수준과 비평의식은 높아졌다. 정치권이 풀어야 할 과제는 크게 늘었고 난이도도 매우 높아졌다. 메르스, 세월호뿐만 아니라 가습기 살균제 사건, 최근의 구의역 사고를 두고도 많은 국민은 정치권의 무능과 무책임을 질타했다. 중앙정부뿐 아니라 서울시 등 지방자치단체도 예외가 아니다.

‘역수행주 부진즉퇴(逆水行舟 不進則退)’라 했다.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배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면 뒤로 밀려나는 법이다. 강 양쪽에서 180도 반대 방향으로 줄을 당겨서야 배가 앞으로 나아갈 리 만무하다. 5도, 10도, 15도씩이라도 각기 방향을 앞쪽으로 향하고 줄을 당겨야 할 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은 노동시장 이중화, 청년 일자리, 신성장산업 같은 국가적 정책 현안에서도 양(兩)진영으로 갈려 서로 정반대 방향으로만 나아가려 한다.

한 번의 대선 승리로 모든 것을 거머쥘 수 있는 승자독식 시스템 아래에서는 협력과 연합의 정치가 들어설 여지가 없다. 우리 편 역량을 키우는 것보다 상대편을 흠집내는 것이 더 쉽고 빠른 승리의 길이라 믿어버린다. 어느 한편의 견해가 발표되기 무섭게 상대편에서 정반대 입장을 발표하는 것은 우리 정치권의 일상사다. 대통령중임제, 분권형 대통령제, 내각제 등 87년 체제를 대신할 시스템을 찾으려는 움직임은 계속되고 있다. 중요한 점은 어떤 체제가 됐건 모두가 함께 조금씩이라도 배를 앞으로 나아가게 할 수 없다면 87년 체제의 비극을 연장할 뿐이라는 것이다.

김용태 < 새누리당 국회의원 ytn@na.g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