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0억 들인 도로명주소 '제자리 맴맴'
새 주소 표기 제도인 도로명주소가 2014년 1월 전면 도입된 지 2년6개월가량 지났지만 일반 국민의 사용률은 여전히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도로명주소가 국민 실생활과 동떨어진 ‘공공기관 전용주소’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4일 우정사업본부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달까지 전국 우편물의 도로명주소 평균 사용률은 70%대 후반을 유지하고 있다. 도로명주소가 전면 시행되기 한 달 전인 2013년 11월 17.7%의 네 배를 넘었다. 하지만 우편물 사용률을 기준으로 도로명주소 사용이 정착됐다고 보는 건 ‘통계 착시’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메일이 보편화되면서 우편물을 보내는 일반 국민이 상대적으로 줄었기 때문이다. 우편물 대부분은 공공기관과 통신회사 및 금융회사에서 일괄적으로 보내는 물량이라는 게 우정사업본부의 설명이다.

일선 구청과 경찰서 민원실 등에서 도로명주소를 쓰는 시민은 적다. 한 구청 관계자는 “민원인 열 명 중 두세 명 정도만 도로명주소를 사용한다”며 “옛 지번주소를 써도 직원들이 컴퓨터 검색을 통해 바꿔주기 때문에 도로명주소를 몰라도 불편함이 없다”고 말했다.

여전히 옛 주소를 쓰는 공공기관과 기업 웹사이트도 적지 않다. 주무부처인 행정자치부가 올 들어 주요 기업과 공공기관 305곳의 웹사이트를 조사한 결과 11%가 넘는 34곳이 옛 지번주소만 쓰고 있었다. 도로명주소를 활용하는 기관 중 55%는 검색 결과가 잘못 됐거나 최신 데이터베이스를 이용하지 않는 등 중요한 오류가 발견됐다.

정부가 도로명주소 도입을 추진한 것은 20년 전인 1996년이다. 2007년 새 주소를 도입하는 내용을 담은 도로명주소법이 제정·시행되면서 정부는 전국적으로 도로명판과 건물번호판 설치 작업에 나섰다. 1996년부터 투입한 도로명주소 사업 예산 약 4000억원 가운데 절반이 넘는 예산이 2007년 이후 쓰였다.

정부는 도로명주소 정착을 위해 홍보에 주력하는 등 안간힘을 쓰고 있다. 행자부는 도로명주소가 지번주소보다 월등히 우수한 주소체계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전혀 모르는 목적지를 주소를 이용해 찾아갈 때 도로명주소가 지번주소보다 쉽다는 것이 행자부 설명이다.

하지만 도로명주소만으로는 실제 위치를 제대로 알기 어렵다는 지적도 많다. 예를 들어 천호대로는 대부분 강동구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도로명주소에선 동대문구도 천호대로에 포함된다.

동대문구 신설동 장안동 용두동 지역의 도로명주소는 ‘서울 동대문구 천호대로 O길’이다. 서울역 사거리에서 파주 통일대교를 잇는 47.6㎞의 통일로 인근에 있는 서울 중구 종로구 서대문구 은평구와 경기 고양시 파주시는 모두 주소에 통일로를 쓴다. 조명래 단국대 도시지역계획학과 교수는 “도로명주소가 정착하려면 익숙한 옛 지번주소의 기억을 없애는 기간이 필요하다”며 “새 주소 정착에 최소한 30년은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 도로명주소

도로에 이름, 건물에는 번호를 부여해 ‘도로명+건물번호’로 구성한 주소 체계. 옛 지번주소의 동, 리, 지번 대신 도로명과 건물번호를 표기한다. 도로명은 폭에 따라 대로, 로, 길로 구분한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