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최혁 한경닷컴 기자 choko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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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대신 빵. 우리는 지금 '빵의 시대'를 살고 있다. 주변엔 빵에 대한 관심을 넘어 직접 빵집을 차리겠다는 사람도 부쩍 늘었다. 빵집은 도처에 널려 있지만 어떤 빵집을 어떻게 차려야 할 지 궁금한 게 많다. 셰프만의 개성으로 '골리앗'을 넘어뜨린 전국 방방곳곳 '작은 빵집' 사장님들의 성공 방정식. [노정동의 빵집이야기]에서 그 성공 법칙을 소개한다.

2013년 3월 박혜령 씨(사진, 32)는 지인의 도움으로 홍대 인근에 9.9㎡(약 3평)짜리 베이글 가게를 차렸다. 편하게 먹을 수 있도록 베이글 안에 치즈, 팥, 단호박 같은 속을 아예 집어 넣어 오븐에 구웠다. 식용벚꽃, 고구마, 쑥 같은 제철에만 먹을 수 있는 재료도 시즌제품으로 판매했다. 베이글 종류만 수십가지에 달했다. 과거 브랜드 매니저 일을 했던 경험을 살려 포장지도 독특하게 디자인했다. 그의 베이글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상에서 '독특한 베이글' '일본식 베이글' 등으로 빠르게 입소문을 탔다. 가게를 차린지 3년. 그는 현재 하루에만 베이글 1000개씩을 팔아치우는 '훕훕베이글' 사장이 됐다.

훕훕베이글이 소비자들에게 알려지는 데에는 채 한 달이 걸리지 않았다. 독특한 베이글 형태와 개성 있는 포장지 디자인 덕분에 20~30대 젊은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이를 계기로 모 배달 애플리케이션(앱)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배달 메뉴 중 베이글을 추가하려던 찰나에 때마침 훕훕베이글이 온라인 상에서 이슈였던 것을 회사 측에서 파악했던 것이다. 홍대로 상권이 한정됐던 박 대표에게는 훕훕베이글을 수도권 전역으로 확대 제공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곧 바로 배달 앱을 통해 모 대기업 아침식사용으로 매일 300개씩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홍대까지 오기 어려운 소비자들도 앱을 통해 주문을 했고요. 임대료가 비싼 홍대의 지역적 특성상 많이 판매하는 것도 중요한 데 배달 앱을 통해 훕훕베이글이 많이 알려지면서 초기에 자리잡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박 대표는 왜 베이글을 선택했을까. 그는 원래 평범한 대기업 회사원이었다. 일본 출장 길에 들렀던 도쿄의 한 빵집의 기억은 그가 베이글집을 여는 데 큰 영향을 줬다. 그곳에서 판매하던 베이글은 표면이 찰졌고 속은 쫄깃했다. 베이글 속에는 단팥, 초콜릿, 녹차 같은 부재료가 듬뿍 들어 있었다. 베이글은 밀가루, 물, 설탕, 소금, 이스트만으도 만들 수 있는 간단한 빵이지만 속에 들어가는 재료에 따라서 가지각색의 빵들이 탄생했다.
/사진= 최혁 한경닷컴 기자 choko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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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다니덜 시절부터 빵을 매우 좋아해서 해외 유명 빵집들을 찾아다니곤 했습니다. 한번은 도쿄에 갔는데 베이글 종류도 다양하고 부재료들을 밀가루 반죽 안에 집어넣어 오븐에 굽는 방식이 인상에 남았어요. 장사도 매우 잘 되는 모습을 보고 왜 우리나라에는 이런 베이글집이 없을까 생각했었는데 제가 그런 베이커리를 차릴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했죠."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평소 취미로 하던 홈베이킹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평일에는 회사에 출근했고 토요일에는 제빵 학원에 다녔다. 일요일에는 학원에서 배웠던 기초적인 기술로 자신만의 베이글 레시피를 만들었다. 원래 손 재주가 좋았던 덕에 가족을 포함해 그 주변에는 박 대표의 빵을 기다리는 지인들이 많았다.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집에서 베이글을 만들어 주변 사람들과 나눠먹었다. 반응이 좋았다. 돈을 주고 사먹고 싶다는 친구들이 있었고 회사 사내카페에선 베이글을 가져오면 대신 판매해주겠다고도 했다.

훕훕베이글의 가장 큰 차별점은 베이글 안에 부재료가 들어가 있다는 점이다. 베이글은 보통 다른 빵보다 밀도가 높아 치즈 같은 부재료를 얹어 밋밋한 맛을 보완하고 부드러운 식감을 돕는다. 소비자들은 베이글을 구매하고 부재료를 별도로 사는 식으로 그동안 베이글을 접했다. 일본에서는 아예 베이글 안에 이 재료들을 집어 넣은 제품들이 등장했다. 일본인들이 자주 먹는 야끼소바(우동볶음)부터 우엉 같은 특이 재료들까지 집어넣은 베이글이 일본에서는 보편적으로 판매되고 있다. 훕훕베이글을 소비자들이 '일본식 베이글'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사진= 최혁 한경닷컴 기자 choko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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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표는 동생, 직원 두 명과 함께 매일 21종류 1000개의 베이글을 손으로 직접 만든다. 그가 갖고 있는 베이글 레시피만 60여가지에 달한다. 박 대표에 따르면 베이글은 바게뜨, 치아바타와 함께 기본 재료로 만들 수 있는 빵 중에 하나다. 아주 간단한 빵에 속하기 때문에 차별화가 쉽지 않다. 국내에서 판매하는 대부분의 베이글은 공장형 베이글이다. 기계로 반죽을 한 뒤 기계로 말아 오븐에 굽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의 손이 닿을 여지가 없다. 베이글 안에 부재료를 넣는 기술이 어려운 것은 아니지만 대량생산에는 적합한 방식이 아니다. 박 대표가 하루에 판매하는 수량을 정해놓는 것도 대량생산을 지양하기 때문이다.

"베이글이 잘 팔린다고 해서 기계로 대량 생산하기 시작하면 지금처럼 다양한 베이글을 만들 수가 없어요. 또 저온숙성과 뜨거운 물에 데치는 과정을 생략해야 하기 때문에 맛도 현저하게 떨어질 수밖에 없죠. 소비자들이 훕훕베이글을 좋아해주는 이유 중의 하나가 치즈감자베이글, 시금치고르곤졸라베이글, 단호박베이글, 쑥베이글 처럼 다양한 베이글 종류가 있다는 것인데 이런 것도 할 수가 없어요. 돈 보다는 소비자들이 호기심과 기대를 갖고 찾아오는 동네빵집으로 남고 싶은 게 꿈입니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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