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대선 유불리 주판알 튕기기…여야와 계파 불문 지역끼리 뭉쳐
부산, 불복 운동까지 예고…대구 “불복 운운, 열세 인정하는 것”


영남권 신공항 입지 선정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부산과 대구·경북(TK) 지역간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주요 국책사업을 표 계산에 따른 정쟁거리로 변질시켰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탈락할 경우 불복 운동까지 예고하고 있다.

여야, 계파를 넘어 지역끼리 뭉치고 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는 9일 후보지인 부산 가덕도를 찾아 ‘가덕 신공항’을 지지했다. 문 전 대표는 “신공항은 지역균형발전과 동남권 주민의 편의, 이 지역의 미래성장동력 확보 차원에서 참여정부 때부터 추진됐다”고 운을 뗐다. 이어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가 연이어서 공약했던 사안으로 더는 표류해서는 안 된다”며 “이제는 입지가 선정돼 현 정부 임기 중에 반드시 착공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 “부산시민은 입지선정 절차가 객관적이고, 공정하고, 투명하게 되고 있느냐에 대해 걱정하고 분노하고 있다. 심지어 친박(친박근혜)의 핵심이라고 알려진 서병수 부산시장마저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며 “정부는 이런 의혹에 대해 명명백백하게 해야 한다”고 했다.그는 “일방적으로 평가 절차가 진행된다면 부산시민은 그 결과를 수용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지역 정치권과 시민단체의 용역 결과 불복 움직임에 동조한 것이다.

더민주 부산시당위원장인 김영춘 의원은 ‘가덕 신공항 유치 비상대책본부’를 출범시켰다.

김현옥 국민의당 부산시당위원장은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와 미국연방항공국(FAA)에서 공항 입지요소로 명시한 ‘고정장애물’을 평가항목에서 제외한 채 용역을 추진하는것은 사실상 특정 지역을 염두에 두고 끼워 맞추는 정치적 용역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부산 지역 100여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가덕신공항 추진 범시민운동본부와 부산 상공인들로 구성된 김해공항 가덕이전 시민추진단은 14일 오후 7시 30분 부산 광복로 일대에서 ‘가덕신공항 쟁취 및 불공정 용역 규탄 시민궐기대회’를 연다고 밝혔다.

앞서 새누리당 부산시당은 지난 8일 서울 여의도의 한 호텔에서 서병수 부산시장 및 부산시 관계자들과 당 소속 부산 지역구 국회의원들이 참석하는 당정협의를 열었다. 새누리당 부산시당위원장인 김세연 의원은 “새누리당이 신공항 문제를 제대로 풀지 못한다면 부산에서의 새누리당에 대한 완전한 지지 철회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서 시장은 신공항이 가덕도에 유치되지 않으면 사퇴하겠다고 했다.

이 같은 움직임에 TK의원들이 반박에 나섰다. 강석호 새누리당 의원은 “용역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단체장이 ‘불복’ 가능성을 흘리는 것은 책임있는 자세가 아니다”며 “신공항 입지는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이 결정할 일이지, 정치권이 ‘감놔라 배놔라’ 할 사안이 아니다”고 말했다. 정태옥 의원은 “5개 시·도지사 합의하에 외국계 회사에 용역을 맡겨 놨는데 결과를 예단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결론을 특정 방향으로 유도하기 위한 압력”이라고 비판했다.

김부겸 더민주 의원은 “부산의 속내는 신공항을 가덕도로 유치하면 좋고 아닐 경우 입지 선정을 무산시킨 뒤 이후 가덕도 신공항 건설을 독자적으로 추진하려는 의도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부산시와 부산 정치권, 시민단체들이 영남권 5개 자치단체의 합의를 무시하고 정부와 정치권을 압박하는 것은 신공항 입지로 가덕도가 열세라는 점을 자인하는 것”이라고 했다. 정치적 동지인 김영춘 의원과 맞서는 모양새다.

두 지역이 신공항 입지 선정을 놓고 이렇게 첨예하게 맞서는 것은 내년 대선 유불리 때문이다. 김영삼 정부는 1994년 부산과 대구가 유치 경쟁을 벌였던 삼성자동차 공장 부지를 부산으로 결정했다. 2년 뒤 총선에서 여당이던 신한국당은 대구에서 13개 지역구 가운데 2곳에서만 승리했다.

지난 4월 총선 결과도 신공항을 정치쟁점화시킨 한 요인이다. 새누리당은 텃밭으로 여기고 있는 부산에서 더민주에 5곳을 내줬다. 부산을 지역구로 둔 한 새누리당 의원은 “가덕도가 탈락할 경우 내년 대선 민심 이반이 걱정된다”고 했다.

정치권에선 가덕도가 탈락할 경우 야당이 대선에서 유리할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부산 민심이 문 전 대표나 역시 이 지역 출신인 안철수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로 쏠릴 수 있어서다. 야당이 뒤늦게 신공항 싸움에 뛰어든 것은 이런 정치적 배경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홍영식 선임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