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당시 적용한 주식매수청구권 가격이 잘못 정해졌다는 법원결정은 매우 의심스럽다. 삼성물산 주주인 일성신약 등이 제기한 소송에서 서울고법은 5만7234원으로 산정된 매수가를 6만6602원으로 높일 것을 주문했다. 두 회사의 대주주인 이건희 회장 일가의 이해관계를 반영해 누군가가 삼성물산 주가를 의도적으로 하락시킨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 결정의 요지다.

주식시장의 속성과 투자상식에 비춰볼 때 이해하기 힘들다. 재판부는 ‘의심할 만하다’ ‘추정할 수 있다’는 등의 모호한 용어로 결정문을 채우고 있다. 적극적인 법률 해석으로 봐 주기에는 ‘아니면 말고’ 식의 과도한 재량이다. 이사회 결의 전부터 언론과 애널리스트들이 두 회사의 합병과 삼성물산 주가관리 가능성을 언급한 점을 개입의 방증으로 제시한 대목은 실소를 자아낸다. 사실과 루머가 섞이고, 추정과 기대가 주가에 반영되는 증시 속성을 도외시한 것이다. 애널리스트는 실현여부와 무관하게 다양한 시나리오를 그리고, 이는 주가변동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해외플랜트와 주택(아파트) 수주에 소극적으로 임한 것을 주가를 끌어내릴 목적이라고 추정한 점은 황당하다. 알려지다시피 해외플랜트 저가수주 문제는 합병 이후에도 건설업계를 강타하고 있고, 주택부문의 높은 리스크 관리도 오랜 고민이었다. 또 그런 상황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삼성물산은 지금도 구조조정에 진땀을 흘리고 있다.

합병결의 이사회 전의 주가하락 책임을 누군가에게 지우려는 시도자체가 엉뚱한 것이다. 삼성물산 주가는 합병결의 이후에도 약세를 지속해 지금은 거의 반토막이 났다. 여기에도 누군가의 고의가 개입됐다고 할 것인가. 제일모직 상장직전 삼성물산의 주가가 ‘이 회사의 장기적인 주가흐름에 부합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그 시점을 새 매수가격산정 기준일로 채택한 것도 근거없기는 마찬가지다. ‘신도 모른다’는 주가흐름을 재판부만 알 수는 없다.

합리적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의 증거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피고의 이익으로 하는 게 재판의 기본이다. 이번 결정은 기업은 곧 악이라는 선입견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