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행이 ‘신용등급 평가가 부실해 유동화증권 투자자들이 손실을 봤다’며 국내 3대 신용평가회사를 상대로 낸 민사소송의 첫 판결이 9월께 나온다. 신용평가사가 등급 산정 잘못을 이유로 소송을 당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31일 금융권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방법원은 기업은행이 지난해 초 한국신용평가 한국기업평가 나이스신용평가 등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 대한 판결을 9월께 내리기로 하고 법리 검토를 하고 있다. 기업은행은 신용평가사들이 KT 자회사인 KT ENS(현 KT이엔지코어)가 지급보증한 유동화증권의 신용등급을 잘못 평가했다며 소송을 냈다. 기업은행은 “신평사들이 유동화증권 신용등급을 모회사인 KT 신용등급에 의지해 과대평가했으며, 적시에 등급을 조정하지 않아 투자자들이 손실을 봤다”며 각 회사에 10억원의 손해배상금을 청구했다.

부실 조선·해운사 등에 투자했다가 손실을 본 투자자들이 재판 결과에 따라 비슷한 소송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KT의 100% 자회사인 KT ENS(현 KT이엔지코어)는 2013년과 2014년에 걸쳐 특수목적회사(SPC)를 통해 만기 1~4개월짜리 1000억원 규모의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을 발행했다. 기업은행을 포함한 6개 금융회사는 특정금전신탁 상품을 통해 이 ABCP를 개인 투자자에게 판매했다.

하지만 2014년 초 KT ENS는 내부 직원이 낀 사기 대출 사실이 적발되면서 기업 신뢰도가 추락했다. 해당 직원은 협력업체가 17개 금융회사에서 3000억원의 사기 대출을 받도록 도운 것으로 드러났다. 모회사인 KT가 지원을 끊으면서 KT ENS는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에 들어갔고, ABCP는 채무불이행(디폴트) 상황에 빠졌다.

기업은행은 이 ABCP를 500여명의 고객에게 600억원가량 판매해 피해 규모가 가장 컸다. 기업은행은 ABCP에 우량 신용등급(A2)을 부여한 신용평가사에 법적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기업은행은 “ABCP가 투자자에게 원리금을 제대로 갚을 수 있는지를 평가해 신용등급을 매겨야 하는데 막연한 기대에 불과한 KT의 영업·재무적 지원 가능성만 보고 적기 상환능력을 갖췄다고 평가했다”고 지적했다. 또 “내부 직원의 사기 대출이 드러나면서 KT ENS의 신용도가 급락하고 우발채무 등이 현실화됐지만 즉시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하지도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신용평가사들은 “모회사의 지원 가능성을 감안한 것이나 KT ENS의 신용등급에 따라 유동화증권의 신용등급을 매긴 것 모두 신용평가 방법론에 따른 것으로 문제가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기업은행의 소송대리를 맡은 법무법인 광장 측은 “우선 일부 손해배상 금액 10억원만 청구했지만 진행 상황에 따라 금액을 확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