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속의 비상장사] '고급 한류 전도사' 조태권의 집념…'화요' 소주 10년만에 불 붙다
‘소주 본연의 몸내가 어떤지를 보여주는 술.’

한국 1호 술평론가로 꼽히는 허시명 막걸리학교 교장은 2005년 광주요(廣州窯)그룹이 내놓은 전통 증류식 소주인 화요(火堯) 41도를 처음 맛보고 이렇게 평했다. 화요는 기존 도자기업(광주요) 및 한식업(가온)과 연계해 ‘한식 문화를 팔자’는 조태권 광주요그룹 회장의 전략 병기였다.

그러나 화요를 만드는 (주)화요가 흑자(2015년 영업이익 5억3800만원)를 기록하기까지는 10년의 숙성기간이 필요했다. 화요는 ‘불(火)로 다스려진 귀한(堯) 술’이란 뜻처럼, 깔끔하고 진한 풍미를 바탕으로 ‘빅2’(롯데주류-처음처럼, 진로-참이슬)가 양분한 희석식 소주 시장의 틈새를 파고드는 데 성공했다.
조태권 광주요그룹 회장
조태권 광주요그룹 회장
◆누적 적자 100억원까지 늘어났지만

[베일속의 비상장사] '고급 한류 전도사' 조태권의 집념…'화요' 소주 10년만에 불 붙다
조 회장이 전통 도자기 기업인 광주요를 부친 고(故) 조소주 회장에게 물려받은 때는 1988년. 그는 글로벌 외식 시장에 ‘고급 한식 문화’를 전파해 관광, 농업, 식음료업을 살리고 국격을 높여야 한다는 ‘문화 보국론’을 지론으로 삼던 경영자였다. 2002년 서울 청담동에 고급 한식당 ‘가온’의 문을 연 데 이어 2005년에 고급 증류주(화요)도 개발한 이유다.

하지만 시장은 녹록지 않았다. 고급 한식과 증류식 소주에 익숙하지 않은 소비자들은 지갑 열기를 주저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한식 세계화 바람이 불기도 했지만 미풍에 그쳤다. “정부가 예산을 배정하니 갑자기 나타난 한식 전문가들이 너도나도 비빔밥 행사를 열기만 했다”는 게 조 회장의 토로다. 그 와중에 가온 본점과 중국 베이징 가온도 적자를 견디지 못하고 문을 닫아야 했다.

(주)화요도 어렵긴 마찬가지였다. 소비자들은 값싼 희석식 소주를 ‘원샷’하거나 ‘폭탄주’로 제조해 즐기는 데 더 익숙했다. 희석 소주 대비 일곱 배 이상 비싼 출고가에 주류 도매상의 반응도 싸늘했다. 화요는 출시 후 5년간 10억원대의 매출을 맴돌았다. 2014년 말까지 (주)화요의 누적 적자는 100억원을 넘었다. 조 회장은 틈틈이 사재를 털어 넣어 버텼다. 2009년에는 100억원 상당의 서울 삼성동 사옥도 처분했다.

◆2010년부터 극적 반전으로 활로 찾아

화요가 반전의 계기를 마련한 건 적극적인 문화 마케팅과 함께 젊은이가 즐길 수 있는 전통을 만들자는 발상의 전환이 먹히면서였다. 회사 측은 기존 주류 공급 경로인 식당보다는 ‘클럽 파티’를 후원하는 전략을 폈다. 화요로 만들 수 있는 칵테일을 시음하는 행사를 자주 열면서 41도짜리 화요에 얼음을 넣어 마시는 ‘화요 온더락’ 등 화요 레시피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에 올렸다. 본격적으로 ‘화요 팬’이 생겨나면서 매출이 급증하기 시작했다. 최근 6년간 30%가 넘는 연평균 증가율을 기록했다. 2010년엔 국보 113호 고려청자 버드나무 무늬병을 재해석한 새로운 병 디자인을 선보이면서 브랜드 가치를 끌어올렸다.

그해 스위스에서 열린 다보스포럼 ‘한국의 밤’ 행사에선 공식 만찬주로 선정되기도 했다. 신생 주류업체들이 성장의 큰 변곡점으로 여기는 ‘마(魔)의 100억원 고지’도 지난해 넘어섰다. 올해 매출 목표는 150억원이다.

화요는 최근 중국 상거래업체인 팬소프트와 계약을 맺고, 41도와 53도 두 제품을 중국에 공급하기로 했다. ‘5년간 20만병(약 100억원)’으로 매출 목표를 잡았지만, 오히려 중국 파트너 측이 “파는 건 걱정하지 마라. 우리가 염려하는 건 이천공장의 생산 능력”이라고 말했다는 후문이다.

문세희 (주)화요 부사장은 “현 설비로도 월 10만~15만병 정도인 생산량의 서너 배를 만들 수 있어 주문 증가에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간접광고(PPL)를 하지 않고 있지만 영화나 드라마의 고급식당 장면에 먼저 섭외 전화가 올 정도로 ‘고급 술’로서의 인지도도 확보했다. 화요의 인기몰이에 모회사인 광주요 도자기도 혜택을 보고 있다. 무광 재질의 자기가 고급 음식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는 소문이 나면서 국내외 주요 셰프의 주문이 늘어나고 있다.

김대훈 기자 daep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