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를 순방 중인 박근혜 대통령이 상시 청문회를 요구하는 국회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번 거부권 행사는 지난해 6월 소위 ‘유승민 파동’에 이어 두 번째다. 야당 쪽에서는 “여소야대를 만든 총선 민의를 저버린 것이며 협치 정신을 깼다”면서 크게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핵심은 그게 아니다. 계속되는 국회법 개정 시도는 그렇지 않아도 지나치게 비대해진 국회 권력을 무한증식시키려는 탐욕이 낳은 것이다.

상시 청문회 관련 국회법 개정안(65조1항)부터 그렇다. 청문회 개최 요건에 ‘소관 현안의 조사를 위해 필요할 때’를 추가해 사실상 365일 아무때나, 그리고 소관업무라는 이름의 어떤 주제에 대해서든 청문회를 열 수 있도록 했다. 입법부가 아니라 독재기구라도 된다는 것이다. 19대 국회 마지막날 감행된 국회법 개정안에는 국회가 권익위원회에 대해 특정 민원에 대한 조사를 요구하면 3개월 내 그 결과를 보고토록 한 놀라운 조항(127조의 3)도 포함돼 있다. 국회가 정부에 특정 민원처리를 요구한다는, 놀라운 개정안이다. 말이 민원 조사이지 사실상 해결을 요구하는 횡포일 수밖에 없다. 국회를 부패시키고 이권화하며 보편적 입법이라는 국회의 존재이유까지 내팽개치는 허망한 권력욕이 아닐 수 없다. 이 조항 역시 정부의 민원과 행정질서를 파괴할 우려가 크기 때문에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당연하지만 청문회 소동에 묻혀 주목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6월 유승민 파동을 낳은 ‘행정입법에 대한 국회 심의권’ 역시 행정부에 대한 국회의 우위를 확고히 하려는 국회법 개정 시도였다. 당시에도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하는 방법으로 국회의 권력확장을 겨우 막아냈다.

틈만 나면 국회법에 손을 대 ‘셀프 권력’을 한없이 확장시키려는 게 작금의 국회다. 누구라도 필요하면 불러내 조사, 규제하고 호통쳐 국가권력 전부를 산하에 두겠다는 위헌적 시도와 다르지 않다. 국회선진화법으로 불리는 국회법 조항도 따지고 보면 정치권의 이해 때문이다. 의장의 직권상정 요건을 ‘여야 합의나 천재지변, 국가 비상사태’로 제한하고(85조 1항) 신속안건처리 요건으로 ‘재적 5분의 3의 가중다수결’을 규정(85조의 2 제1항)해 개혁입법 통과를 어렵게 해놨다. 이렇게 해 놓으면 책임소재도 불분명해지고 정치세력 간 법안 맞바꾸기와 같은 밀실 흥정도 가능해진다.

지난 수년간 국회는 입법 권한을 활용해 수시로 권력 확장을 시도해왔다. 그 결과가 지금의 무소불위 국회 독재다. 대한민국은 엄연히 삼권분립의 민주공화국이다. 마치 마법의 지팡이, 혹은 절대반지라도 되는 양 의원들은 때마다 국회법 개정에 목을 매고 있다. 국회의 무서운 타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