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기업까지 싸잡아 구조조정 논의…해외 발주사, 계약 연기 통보 잇따라
정부와 채권은행이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을 구조조정 논의 대상에 포함시켜 이들 기업의 영업활동이 어려워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A조선사는 최근 선박 수주 협상을 벌이던 일부 발주사로부터 “한국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조선산업 구조조정이 마무리되면 다시 계약 여부를 논의하자”는 통보를 받았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27일 “금융위원회가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에 자구계획을 제출하라고 발표하자 외국 발주사들 사이에서 한국 조선사의 재무상태를 믿기 어렵다는 얘기가 나왔다”며 “이런 분위기 속에서 현대중공업이나 삼성중공업과도 계약을 꺼리는 발주사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한 조선사 임원은 “발주사들은 선박 건조가 한두 달 늦어지더라도 리스크를 줄이고 싶어한다”며 “이들은 정부가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을 겨누는 동안에는 발주를 최소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계약이 한두 달 지연되는 데 그치면 그나마 다행이다. 이들 물량 중 일부는 중국과 일본 등 경쟁국으로 넘어가고 있다. 정부의 ‘관치(官治) 조선’이 수주절벽을 더욱 심각하게 만든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가 중소조선사 구조조정에 속도를 내지 않으면서 시장에서는 저가수주 관행이 다시 생기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수주한 일감이 없으면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가 불가피하다는 얘기가 나오자 일부 중소조선사가 수주에 매달리면서 터무니없는 가격을 제시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한 조선사 영업담당자는 “발주사들이 중소조선사로부터 가격을 받은 뒤 이를 대형 조선사에 역제시하고 있다”며 “이 가격으로 계약을 맺으면 손해를 볼 게 뻔한데, 발주사들은 일부 조선사가 저가수주에 나서니 오히려 느긋하게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와 채권은행이 선수금환급보증(RG)을 무기로 정상기업에 간섭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과거엔 계약 3~4일 전에 RG 발급 협의가 마무리됐다. 그러나 최근엔 계약 전날까지도 은행이 발급 여부를 답해주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RG란 조선소가 파산하면 발주사가 지급한 선수금을 은행이 대신 물어주겠다는 지급보증이다. RG가 발급되지 않으면 수주계약이 파기된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이 파산할 가능성은 거의 없는데, 은행들이 RG 발급에 미온적으로 나서 발주사의 의심을 키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