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잘나가던 약사가 하루아침에 갈 곳 없는 도망자 신세가 됐다. 불티나게 팔리던 피부 전용 조제약을 지방에서 약국을 하는 친구에게 줘서 판매한 게 문제였다. 무허가 제약으로 보건범죄단속법에 걸렸다. 당시엔 위법인 줄 몰랐다. 수개월 도망다녔다. 그의 나이 마흔. 눈앞이 캄캄했다. 절망의 끝에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처음 약국을 열면서 자신에게 다짐한 약속이 떠올랐다. 예순 살까지 무엇이든 이루겠다는 약속이었다. 그 길로 자수했다. 8억3000만원의 벌금형을 받았다. 당시 아파트 한 채 값이 500만원. 약국 운영만으로는 평생 갚을 수 없는 금액이었다. 그는 화장품사업을 하기로 했다. 그리고 자신과의 약속을 지켰다. 김광석 참존화장품 회장(77) 얘기다.

1979년과 작년 ‘데자뷔’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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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회장을 서울 압구정동에 있는 한일관에서 만났다. 그가 19년째 하루도 빠지지 않고 새벽기도를 다니는 소망교회와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77년 전통의 한식 전문점이다. 김 회장은 “일요일에 아들 며느리 손자들과 함께 자주 온다”며 “좋은 식당을 예약해 놓으면 (손자들이) 빠지지 않고 온다”고 했다. 그는 “이 집은 요리에 정성이 담겨 있어 좋다”며 “장사는 정성”이라고도 했다. 손자들이 좋아한다는 불고기와 그가 즐겨먹는 비빔밥을 주문했다.

7남매의 맏이인 그는 약을 달고 산 병약한 아버지를 위해 약사가 됐다. 서울 종로 스카라극장 앞에 피보약국 문을 열었을 당시 피부병이 돌았다. 마땅히 내줄 약이 없어 직접 조제했다. 처음에는 피로개선제를 사러 온 사람들에게 한번 써보라고 나눠줬다. 샘플이었다. ‘피부병에 잘 듣는 조제약이 있다’고 약국 창문에 써붙였다. “그게 내가 직접 카피를 쓴 첫 광고였다”고 김 회장은 말했다. 약을 써본 사람들이 다시 방문하면 반응을 물어 환자 카드에 적어뒀다. 그렇게 3년간 1000명의 ‘빅데이터’가 쌓였다. 입소문이 났다. 약국 앞은 전국에서 몰려온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약사인 친구들이 찾아와 자기들도 팔 수 있게 해달라고 했다. 그렇게 전국 60여개 약국에서 김 회장이 조제한 약이 팔렸다. 1979년 찾아온 인생 최대 위기의 발단이었다. “호사다마”라고 김 회장은 회고했다.

그는 “지난해도 1979년 같았다”고 말했다. 참존화장품은 유동성 위기를 겪었다. 큰아들이 경영하는 계열사가 경영난에 시달려 연대보증을 선 참존화장품까지 흔들렸다. 계열사는 막대한 빚을 떠안고 딜러권을 매각했다. 김 회장은 사옥 세 곳을 팔아 빚을 모두 갚았다.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 얘기도 있었지만 국민 세금으로 메우는 것은 옳지 않다고, 기업이 국민에게 부담을 줘선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큰 돈을 잃었으니 이제부터 1조원 벌어야죠. 안 되나요?”

“미국 중국에서 확장하겠다”

[한경과 맛있는 만남] 김광석 참존화장품 회장, 32년간 '기초 화장품 외길'
주문한 요리가 나왔다. 불고기가 불판에 올랐다. 지글지글 기분 좋은 소리와 함께 맛있는 냄새가 났다. 식당 직원이 단골인 김 회장의 비빔밥을 비벼줬다. “저는 비빔밥을 간장으로 비벼요. 나물 고유의 맛이 살아있어 더 맛있습니다. 굴젓과 곁들여 먹으면 금상첨화죠.” 굴젓의 새콤한 맛이 일품이었다. 함께 나온 녹두전과 맛이 잘 어울렸다.

김 회장이 앞으로의 사업을 낙관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중국 미국 중동 등 해외 사업이 확장세에 있어서다. “지난 5년간 중국 사업이 지지부진했어요. 위생허가를 받아 정식 통관을 거쳐 판매하다 보니 보따리상이 판매하는 제품보다 가격이 비쌌기 때문이죠. 작년 중국 정부가 보따리상 규제를 강화하고 위생허가 기준을 높였어요. 때가 온 거죠. 중국 대형 유통업체 올랑그와도 계약을 맺었습니다. 티몰 타오바오 등 중국 5대 온라인몰에 들어갑니다.” 참존은 중국에서 디알프로그, 참인셀, 징코, 메디셀 등 120여개 품목의 위생허가를 받았다.

미국 K뷰티(화장품) 전문 온라인몰 글로레시피를 통한 제품 판매도 타진하고 있다. 김 회장은 디알프로그 두피 샴푸와 필링 젤을 꺼내보이며 “미국에서 대박을 터뜨릴 것”이라고 소개했다. “글로레시피는 브랜드보다 품질을 보는 것으로 알려졌다”며 “품질이라면 자신있다”고 강조했다.

“지난주에는 두바이와 쿠웨이트를 5박6일 일정으로 다녀왔다”며 “하루 3~4시간밖에 자지 못했다”고 했다. 78세인 그에겐 무리한 일정이 아닐까. “젊은 직원들도 힘들어했지만 저는 끄떡없었어요. 모두 놀라더군요. 그 나이에 어떻게 그렇게 체력이 좋으냐고. 모두 맨손체조 덕분입니다.”

김 회장은 3년 전부터 맨손체조를 시작했다. 약해지는 하체 근육을 단련하기 위해서였다. 11가지 동작을 아침저녁 15분씩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한다. “시간을 내서 운동하러 갈 필요 없이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는 운동”이라며 “내 건강 비결”이라고 소개했다.

“세계 최고 명품 화장품 만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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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고기가 익었다. 달큰하고 부드러웠다. 밥 한 공기를 순식간에 뚝딱 비울 만큼 맛있었다. 먹음직스러운 보쌈김치가 놋그릇에 담겨 나왔다. 배추 안에 밤과 대추 등을 넣어 익힌 이북식 김치다. 맵지 않고 담백한 맛과 아삭한 식감이 특징이다. 더위가 막 시작되는 초여름에 어울리는 맛이다.

김 회장의 꿈은 “세계 최고 명품 화장품을 내놓는 것”이다. 제품마다 ‘세계 제1의 명품 참존이 만들겠습니다’란 문구를 적은 제품보증서를 넣었다. 얼굴 사진과 사인도 새겼다. “내가 만든 제품을 내가 완벽하게 책임져야겠다고 생각했다”고 그는 설명했다.

제품보증서 덕분에 중국에서 짝퉁(모조품) 제조업자를 잡은 적도 있다. 2007년 중국 온라인몰에서 가짜 징코 폼클렌징크림이 판매된다는 소식을 접했다. 문제 해결에 나섰으나 쉽지 않았다. 짝퉁 제품이란 사실을 증명할 방법이 없었던 것. 김 회장은 보증서를 생각해냈다. 공안국은 짝퉁 제조업자에게 제품보증서를 내밀며 “사진 속 인물을 데려오라”고 다그쳤다. 용의자는 곧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죄를 인정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참존화장품은 중국에서 믿고 살 수 있는 제품이란 명성을 얻었다”고 그는 말했다. “내 얼굴을 넣었다가는 바로 잡히게 되는 거죠. 짝퉁을 막을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짝퉁 제품이 판을 치는 중국에서 신뢰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됐습니다.”

청개구리 철학과 봉사하는 삶

김 회장은 ‘청개구리 박사’로 불린다. TV 광고에 청개구리를 등장시키기도 했다. 그가 말하는 청개구리 철학의 핵심은 ‘차별화’다. 나만의 독창적인 기술, 제품, 전략이 있어야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 사업도 인생도 마찬가지다. “운동장에 100명이 있어요. 99명은 까만 양복을 입고 있는데 단 한 사람이 하얀 양복을 입었어요. 누가 눈에 띄겠습니까. 하얀 양복을 입은 한 사람이겠죠. 나머지 99명은 배경이 될 뿐입니다.”

김광석 회장 사무실 앞에 걸려있는 좌우명
김광석 회장 사무실 앞에 걸려있는 좌우명
청개구리 철학을 토대로 김 회장은 컨트롤크림, 클렌징워터, 클렌징티슈 등을 개발했다. 김 회장은 “모두 내가 처음 내놓았다”며 “경쟁사가 기초화장품과 색조화장품을 모두 내놓을 때 기초화장품 한우물만 판 것도, 광고모델을 쓰지 않은 것도 차별화 전략이었다”고 소개했다.

후식으로 한과와 매실차가 나왔다. 시원한 매실차가 깔끔했다. 인생 철학을 물었다. 김 회장은 “성실한 생활인, 꾸준한 창조인, 겸손한 봉사인”이란 좌우명을 소개했다. “성실한 사람은 이 세상에 꼭 필요해요. 그 사람만 있으면 못할 일이 없죠. 창조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아요. 꾸준한 것이 중요합니다. 마지막으로 봉사해야죠. 성실히 생활하고 꾸준히 창조한 이유는 봉사하기 위해서예요.” 그는 “사무실 앞에 이 좌우명을 적어서 걸어놨다”고 했다. “글을 보며 항상 스스로를 채근합니다.”

전설리 기자 sl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