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칼럼] 마이스터와 베루프
1871년 프로이센의 철혈재상 비스마르크가 독일을 통일하고 국가시스템을 정비하자 창업이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1882년 라인강변 본에서 클라이스가 문을 열었다. 베토벤의 고향에서 창업한 이 회사는 파이프오르간 제작업체다.

공장은 시골 목공소처럼 허름하다. 종업원은 60여명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경영학자 헤르만 지몬이 이 회사를 ‘히든챔피언(글로벌 강소기업)’으로 꼽은 것은 기술력 때문이다. 이 회사 작품은 독일의 상징 쾰른대성당을 비롯해 영국 말레이시아 한국 등 세계 50개국에 설치돼 있다. 명성을 듣고 각국에서 사러 오기 때문이다. 4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필립 클라이스 사장은 “100년 넘게 파이프오르간을 제작했지만 똑같은 작품은 하나도 없다”고 말한다. 장수 비결은 축적된 기술력과 창의성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은 마이스터(장인)와 장기근속자들이다.

직업을 ‘소명’으로 여기는 독일

독일은 ‘마이스터’의 나라다. 오랜 현장 경험과 시험을 거쳐 마이스터가 되면 사회적으로 존경받는다. 학벌은 대개 고졸이지만 독일 사회는 교수나 장관, 국회의원보다 이런 기능인력을 훨씬 소중하게 여긴다. 기술개발과 혁신의 주역이기 때문이다. 독일의 한 신문이 고졸자와 대졸자의 진로를 추적한 결과 일정 시간이 흐른 뒤 ‘고졸 기술자는 고급 포르쉐를 몰고, 대졸자는 녹슨 중고차를 끌고 다녔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실업계 고교 졸업자가 연방정부의 경제기술부 장관으로 임명되기도 한다. 미하엘 글로스 전 독일 연방 경제기술부 장관(2005~2009년 재임)은 제분소직업학교를 나와 방앗간 사업에 종사했지만 능력과 경험을 인정받아 장관으로 임명됐다. 그런 곳이 독일이다.

독일인들은 대패질이든 쇠를 깎는 일이든 그 직업 자체를 중시한다. 직업(베루프·Beruf)을 ‘신으로부터 받은 소명(calling)’으로 여긴다. 이런 정신 속에서 명품이 탄생한다. 독일제 자동차 공작기계 의료기기 가전제품에 각국 소비자가 열광하는 것은 소명의식 속에서 생산됐기 때문이다.

기능인 존중하는 사회 돼야

이런 정신은 국가를 부강하게 만든다. 최근 아사히신문 조사 결과 독일은 미국 등을 제치고 국가신용도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독일은 히든챔피언이 타국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을뿐더러 유럽에서 실업률과 청년실업률이 가장 낮다.

올 들어 한국의 수출이 급전직하하고 있다. 4월 말까지 수출은 1566억달러로 전년 동기보다 12.8%나 줄었다. 구조조정에 나서는 대기업이 줄을 잇고 중견·중소기업은 가동률 저하에 신음한다. 주력 산업의 기반기술은 도금 열처리 주물 단조 등 뿌리산업에서 나온다. 장인의 손끝이 중요한 분야다. 헌데 이들 현장은 외국인 근로자들로 간신히 명맥을 이어간다.

평생 ‘기름밥’을 먹으며 쇠 깎는 장인으로 성장한 기업인 중에선 “자식만큼은 절대 고생시키지 않겠다”며 공무원시험을 준비시키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한국에서도 장인을 존중하는 문화, 직업에 대한 소명의식을 갖는 운동을 벌일 때가 됐다. 이들이 자긍심을 갖도록 제도를 보완하는 것도 필요하다. 대를 이어 기술을 축적하는 독일 기업과 경쟁하려면 뭔가 특단의 대책이 나와야 하지 않겠는가.

김낙훈 중소기업전문기자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