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웨이잉 베이징대 경제학과 교수는 “중국이 지난 30여년간 이룩한 경제적 성과는 전적으로 이념의 변화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사진은 상하이 번화가 난징루 모습. 한경DB
장웨이잉 베이징대 경제학과 교수는 “중국이 지난 30여년간 이룩한 경제적 성과는 전적으로 이념의 변화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사진은 상하이 번화가 난징루 모습. 한경DB
1978년 중국이 덩샤오핑 주도로 개혁·개방을 시작할 때 두 가지를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중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학자로 꼽히는 장웨이잉(張維迎) 베이징대 경제학과 교수의 설명이다.

첫째 개혁이 그렇게 길어질지 몰랐다. 당시 개혁가들은 5년에서 10년 정도면 개혁을 완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1980년대 중반까지도 1990년대가 되면, 아무리 늦어도 1995년이면 개혁이 마침표를 찍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하지만 30여년이 흐른 지금도 중국에선 여전히 개혁이 진행 중이다. 둘째 경제발전 속도가 그렇게 빠르고 개혁 성과가 크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1980년대 초 덩샤오핑이 2000년까지 국민소득을 두 배로 높인다는 목표를 제시했을 때 많은 사람이 회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지나친 모험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10년이 지나지 않아 중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두 배로 증가했다. 국가별 경제 규모 순위는 1978년 세계 13위에서 현재 세계 2위로 뛰었다. 중국 개혁가들은 시장경제를 수립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인식하지 못했고, 부를 창조하는 시장경제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더더욱 인식하지 못했다.

중국이 개혁·개방 이후 기적이라 불릴 만큼 고도성장을 이루자 서구 학자들은 정부와 엘리트 관료 주도의 경제성장을 지칭하는 ‘중국모델’에 주목했다. 2009년 중국이 과감한 경기부양책으로 글로벌 금융위기를 벗어나자 이 모델은 더 각광받았다. 장 교수는 “중국의 경제적 성공이 ‘중국모델’에서 비롯된다는 인식은 착각”이라며 “중국이 지난 30여년간 이룩한 성과는 전적으로 이념의 변화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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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교수는 《이념의 힘》에서 중국이 지난 30여년 동안 어떤 개혁의 과정을 거쳤고, 중국인들의 이념 변화가 어떤 힘을 발휘했는지 살펴보면서 향후 중국 개혁 청사진을 제시한다. 저자에 따르면 인간은 이익의 지배뿐 아니라 이념의 지배를 받는다. 사회 변혁과 인류 진보는 사회를 바꾸는 새로운 이념 덕분이다. 이념의 변화 없이는 제도나 정책의 변화도 없다.

이념의 힘은 사회 변혁 시기에 두드러진다. 문화대혁명(1966~1976)이 끝나고 덩샤오핑이 시장화 개혁을 주창한 것도 그에게 새로운 이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계획경제로는 중국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인민들에게 보다 많은 자유를 주고 스스로 큰 적극성과 자발성을 보이기 위해선 시장이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믿었다.

중국 개혁은 사상 경쟁의 결과다. ‘진리기준 토론’과 ‘사상해방운동’이 없었으면 덩샤오핑의 개혁은 불가능했다. 저자는 여기서 경제학자의 역할에 주목한다. 경제학자 간 치열한 토론이 없었다면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목표 수립도 없었다는 것이다. 지난 30여년 동안 중국 경제학자들의 가장 훌륭한 업적은 중국인들로 하여금 200년 전 애덤 스미스가 제시한 시장경제의 이념을 받아들이게 한 것이다. 중국인들을 인민공사(대규모 집단농장)에 대한 미신에서 벗어나게 했고 계획경제에 대한 미신을 타파했다. ‘큰솥밥’(큰 솥에 밥을 해 같이 먹는다는 의미로 능력에 관계없이 균등히 먹는다는 평등분배주의)과 ‘철밥통’의 평준화를 좋은 제도로 믿지 않게 했다. 중국 민중에게 자유경쟁과 자유가격, 사유재산권, 기업가정신 등 경제 발전에 없어선 안 될 중요한 요소들을 알려줬다. 중국인들은 이를 바탕으로 개혁을 추진했고 중국 경제는 빠르게 발전했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저자는 진단한다. 중국은 여전히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로 전환하는 중이다. 현재 중국의 국유기업은 지나치게 강대하다.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5~40%에 달한다. 어느 나라든지 국유기업 비중이 GDP의 10% 이하로 내려가지 않으면 시장경제라 부를 수 없다. 중국이나 서구나 기업가들은 불확실성과 끊임없는 혁신이라는 두 가지 문제에 대응해야 한다. 차이는 중국 기업가는 서구 기업가와는 달리 시장의 불확실성뿐 아니라 정책과 제도의 불확실성에 대응하느라 바쁘다는 것이다. 또 소비자의 기호에 따른 기술적·상업적 혁신은 물론 제도와 체제의 혁신에 정력을 낭비하고 있다.

저자는 중국 전체에 만연돼 있는 ‘반시장 경향’을 경계한다. 한국 사회에도 시사점을 주는 대목이다. 중국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문제는 시장화 개혁이 부정확하게 이뤄진 지점에서 정부가 가진 권력이 지나치게 크고 기업가들의 역할이 철저하게 발휘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했다.

저자는 중국의 대표적인 자유주의 경제학자답게 자유와 시장, 경쟁, 기업가 정신의 가치를 줄기차게 옹호한다. 그가 제시하는 중국 미래 30년 개혁의 큰 목표도 ‘자유와 공정, 법치와 민주사회’를 건립하는 것이다. 저자는 “견고하고 지속적인 시장화 개혁만이 자유 경쟁을 모든 영역으로 확대해 성장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며 “경제 자유화를 이룬 다음 정치 민주화가 자리 잡아야 안정된 사회로 나갈 수 있다”고 강조한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