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가 페리클레스가 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지겠는가?”

[책마을] "여러분, 양심과 바꾼 안락한 삶을 거부합시다"
극작가 바츨라프 하벨이 1989년 공산정권 몰락 이후 첫 체코슬로바키아 대통령으로 취임할 당시 폴란드 역사학자 아담 미치니크가 던진 질문이다. 억압적인 현실에 저항하며 권력을 비판한 극작가에게 국가 수반은 어울리지 않는 자리처럼 비쳐서였다.

역사적으로 현실 정치는 철학자의 고뇌와 이상주의를 쉽게 용납하지 않았다. 마키아벨리는 ‘사자의 힘과 여우의 꾀’를 지닌 정치인이 현실 정치에 더 어울린다며 정치의 영역에서 윤리적 가치를 배제했다. 이상주의에 빠진 정치인보다 당장 우리가 처한 ‘빵’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정치인이 더 큰 인기를 누린다는 이유에서였다.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공화당 후보가 된 도널드 트럼프처럼 말이다. 대부분의 정치인은 말한다. “정치는 본래 그런 거야. 그러니까 권력을 잡아야 해.”

하벨은 달랐다. 그는 정치 영역에서도 자신이 추구한 도덕과 양심이라는 이상주의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가 예술가와 현실 정치인 사이의 간극을 메울 수 있던 이유는 정치를 ‘우리 자신과 세계를 향상시키는 예술’로 봤기 때문이다.

불가능의 예술은 하벨이 재임 중 작성한 35편의 연설문을 모은 책이다. 정치 철학과 세상 인식, 인간 문명에 대한 성찰과 사유를 담고 있다.

비폭력 무혈혁명을 뜻하는 ‘벨벳 혁명’의 상징인 하벨은 단순히 전체주의에 대항해 싸운 것이 아니다. 그는 ‘후기 전체주의’에 저항했다. 1968년 ‘프라하의 봄’이 소련군의 탱크 앞에서 시든 뒤 체코를 지배한 것은 후기 전체주의의 무미건조함이었다. 국가는 민중에게 단순 생존의 문제에 집중하도록 했다. 최소한의 생활과 안락을 보장받는 대가로 이들은 체제에 복종하는 삶을 살았다. 삶에 대한 책임감이나 진리에 대한 분별력 따위는 없었다.

[책마을] "여러분, 양심과 바꾼 안락한 삶을 거부합시다"
하벨이 전체주의라는 공공의 적을 무찌른 뒤 더 큰 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한 이유다. “국제 마피아 집단도 우리의 주적이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오늘날 주적은 우리 안에 있습니다. 최악의 본성은 우리 내면에 있습니다. 최악은 공공선에 관심 없는 자만심, 개인적인 야망, 이기심과 경쟁의식입니다. 이런 최악의 본성과 싸워야 합니다.”

하벨은 후기 전체주의가 공산주의 체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고 봤다. 자유를 얻은 많은 나라에서 사람들은 여전히 ‘먹고사니즘’에 집중하고 정치는 ‘그들만의 리그’라며 외면한다. 물질에 휩쓸려 정신의 부유함을 잊고 살아간다. 전체주의 사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자유의 유일한 출구로 ‘소비자의 삶’이라는 선택지가 생겼을 뿐이다.

하벨의 말이 오늘날에도 의미가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는 우리 안의 적과 싸우기 위해 인간의 유한성과 이를 넘어서기 위한 보편적 책임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양심과 책임에 기반한 시민의 정치 참여를 역설했다. 또 다른 전체주의를 막기 위해서라도 인간의 한계를 인식하고 겸손함을 지녀야 한다고 했다. 자연과 우주의 ‘초월성’ 앞에서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는 겸허함이 있어야 다시는 전체주의적 발상이 싹트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벨은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지 않아 정치적 타격을 입기도 했지만, 가치와 윤리적 원칙에 바탕을 둔 꿈을 꾸는 것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비록 그것이 ‘불가능의 예술’이라도 말이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