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에 전시된 우순옥 교수의 ‘무위의 풍경’.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에 전시된 우순옥 교수의 ‘무위의 풍경’.
우순옥 이화여대 교수(58)는 현대인의 다양한 삶의 방식을 철학적 사유로 풀어내는 ‘개념미술가’로 불린다. 이화여대를 나와 독일 뒤셀도르프 쿤스트 아카데미에서 수학한 뒤 미술과 철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두 장르의 융합을 지향하고 있다.

그가 다음달 12일까지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펼치는 ‘무위예찬(無爲禮讚)’은 구체적인 사물을 표현하기보다는 만질 수 없고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시각예술로 보여주는 이색적인 전시회다. 작가는 “우리 인생이 색이나 문자, 글, 시간을 만들어가는 사유의 과정일 수 있다고 생각해 전시 제목을 ‘인생의 무위’로 붙였다”고 했다.

우 교수는 5년 만에 여는 이번 개인전에 만질 수 없지만 무위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회화, 영상, 드로잉, 설치작품 12점을 들고 나왔다. 숨가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색다른 작품을 감상하며 결과를 중시하는 일상에서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스스로의 삶을 응시할 수 있는 기회다. 작가는 장소, 기억, 존재와 부재, 기다림, 시간 같은 인생의 소중한 가치들을 마치 호주머니에서 메모장을 꺼내듯 보여주고 있다.

1985년 독일 뒤셀도르프로 유학을 떠나기 전에 완성한 유화 작품 ‘침묵의 바다’는 세월의 무상함에 관해 묻는다. 작가는 “민중미술이 유행하던 시기에 20대 대학원생으로서 실존적 고민을 담아 그린 작품”이라며 “검은색을 반복적으로 칠해 망망대해 같은 심연을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그림이 젊은 시절에는 정말 소중하고 애절했지만 막상 곁에 없어도 잘 살게 되더라”며 “30년 만에 그림을 꺼내 살펴보니 얼굴의 주름처럼 세월의 흔적이 역력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꾸깃꾸깃해진 작품의 이름을 ‘시간의 그림’으로 바꾸고 그대로 전시장에 걸었다.

‘시간의 그림’과 함께 눈길을 끄는 작품은 작은 모니터를 통해 상영되는 ‘무위의 풍경’이다. 독일 쾰른에 있는 작은 교회를 찾아가면서 촬영한 약 10분짜리 영상을 늘려서 10시간이 넘는 분량으로 만든 작품이다. 어디에도 없는 곳에 대한 철학적 응시, 보이지는 않지만 어딘가에 있을 듯한 ‘잃어버린 낙원’에 대한 환상을 영상미학으로 연출했다.

난해한 철학적 사고로 변환시킨 풍경은 마치 사진예술처럼 다가온다. 작가는 “여기서 무위(無爲)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모든 일을 이룬다’는 역설적 의미”라며 “결과보다 과정 속 이야기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전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02)735-8449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