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권익위원회가 일명 ‘김영란법’으로 불리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약칭 청탁금지법) 시행령을 오는 13일자로 입법예고했다. 시행령에선 공직자 등이 사교·부조 차원에서 받을 수 있는 상한선을 음식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비 10만원으로 정했다. 입법 취지를 고려하면서 국민 설문, 공개토론회 등을 토대로 결정했다고 한다. 또 직무 관련 강연료(시간당)는 공무원 행동강령보다 7만~10만원 인상한 장관 50만원, 차관 40만원, 4급 이상 30만원, 5급 이하 20만원을 적용한다. 시행령은 40일간의 입법예고 기간에 각계 의견수렴을 거쳐 오는 8월께 확정된다.

김영란법은 지금도 논란이 그치지 않고 있다. 적용 대상의 위헌성, 법 조항의 모호성, 과잉금지 위배 같은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여기에다 시행령까지 나와 또다시 논란이 예상된다. 우리 사회의 부패 관행은 반드시 근절해야 한다. 아예 전면 금지하라는 여론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입법 취지가 아무리 좋더라도 부작용은 최소화해야 한다. 농어민, 자영업자의 절박한 현실도 무시할 수 없다. 3만원 넘는 음식, 5만원 넘는 명절 선물세트를 뇌물로 간주하게 돼 그 파장을 짐작하기 어렵다. 박근혜 대통령이 최근 언론사 편집·보도국장 간담회에서 법 시행에 따른 내수소비 위축을 우려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김영란법은 사실상 전 국민에게 적용되는 법률이다. 직접 대상인 공직자, 언론인, 사립학교 교원은 물론 이들에게 금품을 준 사람도 처벌한다. 그런데도 정부는 입법 1년2개월이 지나서야 시행령을 내놨다. 기준의 적정성은 차치하고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 더구나 세월호와 ‘관피아’의 산물인 김영란법은 깊이 있는 검토보다는 여론의 압력에 졸속 입법됐다. 이 법을 제정한 국회의원은 처벌 대상에서 아예 쏙 빠졌다.

더 납득할 수 없는 것은 헌법재판소다. 지난 3월 박한철 헌재 소장은 법 시행 전에 위헌 여부를 심판하겠다고 밝힌 바 있지만 아직 일언반구가 없다. 시행이 코앞인데 정치일정을 의식하는 듯하다. 위헌 또는 한정위헌 판결이 나면 시행 전에 법 개정부터 해야 할지도 모른다. 국민의 일상생활에 큰 영향을 미칠 법을 이렇게 미적거려도 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