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한 외과의사의 '흑역사' 고백…그 속엔 삶과 죽음의 성찰이
‘사람은 실수만큼 성장한다.’ 당연한 얘기다. 하지만 사람의 목숨이 걸렸다면 무게가 달라진다. 환자의 생사가 손끝에 달린 외과 의사들에게 저 문장은 이렇게 바뀐다. ‘베테랑 전문의라는 이름 뒤엔 구하지 못한 수많은 환자가 있다.’

영국 신경외과 의사 헨리 마시는 《참 괜찮은 죽음》에서 “많은 실습을 해야만 까다로운 수술을 잘 해내게 된다는 것은 너무나 고통스러운 진실”이라며 “모든 외과 의사는 내면에 짊어진 공동묘지가 있다”고 고백한다.

30여년간 의사로 일한 저자는 병원에서 겪은 25가지 일화를 풀어낸다. 화려한 경력 자랑이 아니다. 어떤 이들은 수술로 목숨을 건지지만, 영영 깨어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더 나쁜 상황도 일어난다. 미세혈관 하나라도 잘못 건드리면 환자는 불구가 된다. ‘환자를 망가뜨린 실수’와 판단착오의 경험은 결코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저자는 병원에서 삶과 죽음의 단면을 본다. 오랜 경험에서 나름의 철학도 생겼다. 그는 “괜찮은 죽음은 떠나는 사람과 떠나보내는 사람 모두 최선을 다할 때 맞이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최선이 무엇인지 알기는 쉽지 않다. ‘목숨만 붙어있게 하는 수술’을 놓고 벌어진 언쟁이 그랬다. 사고로 양쪽 전두엽이 손상돼 언어기능과 판단능력을 잃은 채 환자가 병원에 도착했다. 저자는 “인간의 존엄성이 사라진 삶을 사는 것과 평화로운 죽음 중 무엇이 환자를 위한 길인지 갈등했다”고 털어놓았다.

병원에서 의사가 겪는 혼란과 망설임도 솔직히 드러낸다. 2%의 가능성을 보고 수술을 시도할까, 아니면 무리한 수술 대신 가족과 마지막 순간을 보내라고 말할 것인가.

의사도 인간일 뿐이라며 이해를 구하는 책은 아니다. 의사가 털어놓는 고민과 실수를 읽으면서 스스로 ‘괜찮은 죽음’이 무엇인지 돌아보게 된다. 직업상 필요한 객관성을 유지하면서도 인간으로서의 공감과 연민을 잃지 않으려는 저자의 노력이 공감을 자아낸다.

이효진 교보문고 북마스터는 “환자와 함께한 경험으로 삶과 죽음 이야기를 친숙하게 풀어낸 책”이라며 “뜻깊은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준다”고 설명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