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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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영국 역사학자 토머스 칼라일이 ‘우울한 과학(dismal science)’이라고 부른 경제학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더 우울한 상황에 빠졌다. 로버트 실러나 라구람 라잔 같은 일부 경제학자를 제외하고 대부분 경제학자는 위기를 예측하지 못했다. 법이론가이자 경제학자인 리처드 포스너에 따르면 그 반대였다. 2000년대 저명한 경제학자들은 새로운 불황이 나타나지 않고 자산 거품은 없을 것이며, 세계적 은행은 안전하고 건전하다고 믿었다.

많은 이들이 이를 경제학에 대한 근본적인 실패의 증거로 해석했다. ‘경제학은 단순하고 고립적이며 시장을 물신화한다’ ‘경제학은 인간과 시장에 대한 비현실적인 가정에 기반해 문화, 역사 등 다른 배경 조건을 무시하는 보편적인 주장을 한다’ ‘경제학은 암묵적인 가치 판단으로 가득 차 있어 경제 발전을 설명하고 예측하지 못한다’ 등 비판론자의 주장이 득세했다.

[책마을] '이상적 경제 모델'에 대한 환상을 지워라
대니 로드릭 미국 하버드대 국제정치경제학 교수는 《그래도 경제학이다》에서 “이런 비판들은 경제학이 특정한 이념적 성향이 있거나 유일한 결론을 내리지 않는 다양한 모델의 모음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 결과”라고 반박한다. 그러면서도 “물론 경제학자들 스스로 이런 다양성을 나타내지 못하는 한 잘못은 경제학자 자신에게 있다”고 지적한다.

로드릭 교수는 이처럼 경제학을 옹호하는 동시에 비판한다. 세계화와 경제 발전에 관해 독창적이고 예지력 있는 분석으로 유명한 저자는 이 책에서도 독특하면서 설득력을 갖춘 논리로 경제학의 강점과 약점을 설명한다.

저자의 주장을 거칠게 정리하면 이렇다. 경제학은 언제 어디서나 들어맞는 법칙과 이를 설명하는 하나의 이상적인 모델을 가진 거대과학이 아니다. 현실의 문제를 맥락 속에서 파악하는 수많은 모델의 모음이다. 경제학은 이전의 모델이 설명하지 못한 특징을 설명하는 새로운 모델과 함께 수평적으로 발전한다.

시장의 효율성에 대한 근본 정리인 ‘보이지 않는 손’ 모델은 완전경쟁시장을 기반으로 한다. 하지만 현실의 시장은 불완전한 경우가 많기에 수많은 불완전경쟁시장 모델이 발전했다. 1970년대 이후에는 비대칭적 정보가 모델화됐고 오늘날에는 인간의 비합리적인 행동에 기반한 행동경제학 모델이 각광받고 있다. 새로운 모델이 이전 모델을 대체하거나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특정한 환경에서 더 적절한 새로운 차원을 도입하는 것이다. 이처럼 모델들이 축적되며 경제학이 통찰하는 범위는 더 확대된다.

경제학 모델은 보편타당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자연과학 모델과 달리 맥락에 의존한다. 기껏해야 부분적인 설명만을 제시하며 특정한 상호작용 메커니즘과 인과적인 경로를 명확히 하기 위해 설계된 추상에 지나지 않는다.

경제학자들이 이런 모델의 특성과 다양성을 망각하고 하나의 모델을 유일한 모델로 혼동할 때 실패가 나타난다. 대표적인 사례가 글로벌 금융위기다. 금융위기를 설명하고 예측할 수 있는 많은 경제 모델이 있었다. 하지만 경제학자들은 시장가격이 참여자에게 사용 가능한 모든 정보를 반영한다는 ‘효율적 시장가설’에 기초한 몇몇 모델을 과신했다.

때로는 모순적인 다양한 경제 모델을 포용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경제학자들은 공공 정책의 문제를 다룰 때 종종 잘못된 확신으로 모델의 다양성을 망각한다. 다양한 모델을 익히며 훈련받았지만, 상황에 맞춰 어떤 모델을 선택해야 하는 데는 익숙하지 못하다. 결국 자신의 이데올로기나 정치적 선호에 따라 모델을 선택하고 이는 실패로 이어진다.

저자는 경제학이 결정적이고 보편적인 답을 주지는 못하지만 사회의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 훌륭한 분석 도구를 제공한다고 강조한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와 해리 덱스트 화이트가 기초를 다진 브레턴우즈 체제, 교통량이 많은 시간과 구간에서는 요금을 높인 혼잡요금제, 멕시코의 산티아고 레비가 도입한 빈곤 퇴치 정책 등을 예로 든다.

관건은 경제학자들이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적절한 모델을 선택하는 기예를 갖추는 것이다. 저자는 “경제학이 맥락과 관계없이 적용되는 보편적인 설명이나 처방을 제시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사회 현상은 너무도 가변적이고 다양하기 때문에 유일한 분석틀에 구겨 넣어질 수 없어서다. 저자는 “각각의 경제학 모델은 전체적인 지형의 조각을 보여주는 부분적인 지도”라며 “이들이 모두 합쳐지면 사회적 경험을 구성하는 무수히 많은 언덕과 계곡에 대한 최고의 안내서가 된다”고 말한다.

책은 전체적으로 보면 ‘자기 비판’의 형태로 경제학을 옹호한다. 경제학의 의미와 역할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줄 만하다. 경제학을 비판하는 사람들과 옹호하는 사람 모두 읽어볼 만한 책이다. 하지만 ‘경제학이 어떤 종류의 과학인가’에 대한 기본 전제부터 논란의 여지가 있다. 저자는 현실의 문제에 대해 가장 적절한 경제학 모델을 선택하는 방법도 제시하지만 과연 그런 ‘기예’를 갖춘 경제학자들이 실제로 많이 나올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남는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