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재 칼럼] 아직은 혼돈의 이란
검은 차도르로 온몸을 감싼 작은 체구의 노파는 젊은 여성들의 히잡 쓰는 모양새에 혀를 찬다. 젊은 그녀들은 쓴 것도 아니고 벗은 것도 아니고 적당히 뒷머리에 걸치고 있을 뿐이다. 삐딱하게 걸쳐진 히잡들은 언제 흘러내릴지 혹은 벗어던져질지 모른다는 분위기다. 그녀들은 오직 귀찮다는 표정이다. 그래도 TV에 등장하는 에어로빅 강사는 아직은 모두 남자다. 놀랍게도 테헤란 시내에는 미나레를 높이 세운 모스크를 찾기 어렵다. 시아파의 본산인 이 오랜 도시는 저녁 기도 시간을 애매하게 둘러대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신정국가에서 종교를 보기 어렵다는 이 기묘함이라니! 구 소련의 마지막 몇 년도 그랬던 것 같다. 퇴조가 확실치 않은 것은 떠오르는 것이 분명하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

지난 1월의 성명서에 따르면 미국의 경제제재는 확고하게 해제됐다. 그러나 구체제는 건재하다. “테헤란 북쪽에 사는 사람들과 남쪽 서쪽에 사는 사람들은 많이 다르죠.” 거리에서 만난 그녀들은 정치에 대한 냉소적 반응을 굳이 숨기지 않았다. 국회의원 선거는 온건개혁파의 42% 득표라는 빅뉴스를 1단짜리로 보도한다. 2차 결선투표였기에 그럴 수도 있겠지만 국회는 국가적 의사결정의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신정국가에는 최고지도자가 있고 그 계보는 호메이니에서 하메네이로 전승되는 은밀한 정치 프로세스를 거친다.

그렇다. 공항과 호텔의 텅 빈 벽면을 채우는 저 호메이니가 누구였던가. 불만스런 1970년대의 마지막을 장식한 이란 혁명의 주인공 아야툴라 호메이니의 육성 녹음은 당시 한국 청년들 사이에서까지 은밀하게 유통됐다. 서울의 대학생들은 알아듣지도 못하는 호메이니옹의 저 유명한 반미 연설 테이프를 숨죽여 듣곤 했던 것이다. 팔레비의 종말을 말하듯이 박정희 시대의 종언을 꿈꾸면서…. 그 호메이니의 이란 혁명은 성공한 것인가. 달빛에 바래면 혁명조차 신화가 되고 마는 것이어서 지금 테헤란의 젊은이들에게는 그 역시 지나간 역사의 부담이며 무거운 그림자다.

“30%요? 100%는 족히 될 겁니다.” 치솟는 인플레에 대한 내연하는 불만과 함께 변화는 그렇게 시작됐다. 미국의 경제제재는 풀렸지만 이것이 곧바로 개혁개방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화폐가치는 떨어지고 밀수가 고무 조장되는, 아직은 불안이 교차하는 그런 국면 말이다.

금융은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고 미국은 오바마의 서두른 경제제재 해제가 초래할 문제군들에 주저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이란을 다녀온 기록만으로도 한국 여권에 찍힌 미국 비자는 자동으로 취소된다. 미국의 약속위반이다. 투자 기업에 대해서는 이익송금이 완전한 자유라고 관료들은 강조하지만 정작 기업인들은 어이없는 얘기라며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우왕좌왕이며 허둥지둥이다. 세계 각국이 이란에 투자하기를 다투고 있는 상황이라는 경제관료들의 자랑스런 설명은 금세 ‘웃긴다’는 냉소에 직면할 수도 있다. 싸구려 투자에는 문을 열지 않겠다는 자부심은 거의 모든 후진국의 공통된 특징이다. 중국 러시아 인도와 할 수 있는 것은 제한적이다. 그것이 이란의 고민이다.

테헤란은 여전히 정치와 종교의 교차로를 방황하는 중이다. 종교라기보다는 종교라는 이름을 가진 독특한 정치권력의 지배 체제다. 그래서 ‘내로라하는 종교 지도자가 이란 최대의 피스타치오 농장을 소유하고 있다는데 사실인가’ 등의 질문은 엄격하게 불허된다. 소위 종교 지도자들의 가문과 권력의 원천을 묻는 질문들도 금지된다. 정치 지도자들이 상업도 영위할 수 있는지를 묻는 것도 마찬가지다. 통역들은 행여 고약한 질문이 나올까봐 미리부터 설레발을 친다. 신정국가에 대한 전망이나 국가 최고지도자들에 대한 구체적 질문도 금지된다. 혁명은 끝났지만 혁명수비대는 이렇게 엄존하고 있다.

검은 터번은 사라졌지만 아직 이란은 이란이다. 4000m 알바호즈 기슭의 아름다운 테헤란은 지금 한국 기업인들로 저잣거리를 방불케 한다. 오, 테헤란의 한국인들에게 축복 있으라.

테헤란=정규재 주필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