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동부 퀸즐랜드주의 대표적 석탄 광산타운인 모란바. 조그만 시골마을에서 호주 광업 붐의 중심지로 급부상했던 이곳은 원자재 거품이 꺼지며 급격한 쇠락을 겪고 있다. 인부 2만여명이 떠나간 뒤 부동산은 폭락했다. 호주 부동산정보매체 도메인에 따르면 2012년 72만호주달러(약 8억5000만원)에 거래된 침실 4개짜리 주택이 지난 3월 13만호주달러에 팔렸다.

철광석과 천연가스 산지로 유명한 호주 서부의 오지 퍼스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비행기를 이용해 2주 단위로 출퇴근하는 ‘장거리 통근자’로 북적이던 퍼스에선 한때 트럭기사들도 억대 연봉을 받는 호황을 누렸다. 유흥업소 여성들이 퍼스로 원정을 떠난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현재 퍼스 중심가의 오피스 공실률은 24.5%. 시드니(6.8%)의 네 배 수준이다. 퍼스의 공실률 통계는 1993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글로벌 컨트리 리포트] 중국에 울고 웃는 호주…원자재 쇼크 뒤 '차이나 머니'로 활력
○거품 꺼진 광산업…파산·실업자 증가

모란바, 퍼스 등의 몰락은 중국 경기가 둔화되면서 원자재 수요가 크게 줄어든 탓이다. 2011년 t당 180달러를 넘던 철광석 가격은 60달러를 밑돌고 있다. 철강을 만들 때 연료로 쓰는 석탄 가격도 동반 하락했다. 중국은 값싼 자국산 철강제품까지 밀어내면서 세계 철광석 가격 하락을 부채질하고 있다.

호주의 광물자원 수출은 1744억달러(약 198조9000억원)로 호주 전체 상품 수출의 70.6%를 차지한다. 호주는 중국에 대한 무역 의존도가 큰 국가다. 수출과 수입 모두 중국이 1위다. 지난해 호주의 대(對)중국 수출액은 903억2000만달러로, 2위인 일본(298억1500만달러)의 세 배가 넘는다. 원자재 가격 하락으로 호주 경제가 휘청거린 까닭이다.

지난달 7일엔 호주의 중견 광산·철강회사 아리움이 중국산 공세에 밀려 파산했다. 호주 경제지 파이낸셜리뷰는 “철광석 등 원자재시장 약세로 잠재적으로 5500명이 일자리를 잃을 전망”이라며 “다가오는 선거에 빅 이슈로 등장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관광·부동산·교육산업이 버팀대

원자재시장이 큰 타격을 입었지만 지난해 4분기 호주 국내총생산(GDP)은 전년 동기 대비 3% 증가해 비교적 선방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기자는 호주 경제 상황을 듣기 위해 한국언론진흥재단과 호주 외교부가 기획한 한·호주 언론교류 프로그램을 통해 지난달 15일 호주 4대 은행 중 하나인 ANZ의 멜버른 본사를 찾았다. 대니얼 그래드웰 ANZ 이코노미스트는 “관광과 교육, 부동산시장 성장이 광산업과 원자재시장 위축을 상쇄하고 있다”며 “원자재시장 침체로 호주달러 가치가 떨어지면서 호주를 찾는 외국인이 크게 늘어난 덕”이라고 분석했다.

흥미로운 건 관광, 교육, 부동산시장을 떠받치는 수요 역시 중국인들이라는 점이다. 지난해 호주를 찾은 관광객은 뉴질랜드인(126만8000명)이 가장 많았으며 중국인(93만3700명)이 2위를 차지했다. 유학생은 중국이 1위다. 호주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중국인 유학생이 17만212명으로 2위인 인도(7만2504명)를 크게 웃돌았다.

멜버른 번화가의 중국인 대상 중개업소.
멜버른 번화가의 중국인 대상 중개업소.
중국의 영향력이 가장 두드러지는 분야는 부동산시장이다. 시드니, 멜버른 등 주요 도시의 번화가에는 중국어 간판을 내건 부동산중개업소들이 쉽게 눈에 띄었다. 호주 일간 시드니모닝헤럴드는 “중국인 투자자들의 주택 구입으로 호주 주요 도시의 집값은 지난 7년간 55% 뛰었다”고 전했다.

○中 투자 전방위 확산…무역 의존 심화

글로벌 회계법인 KPMG에 따르면 중국은 미국에 이어 두 번째 대(對)호주 투자국이다. 지난해 150억호주달러를 투자했다. 중국의 호주 투자는 농업, 헬스케어, 인프라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른바 ‘베이징 붐’이다. 이정훈 KOTRA 멜버른무역관장은 “원래 자원 투자에 집중했던 중국이 소비사회로 바뀌면서 투자 패턴이 다양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중국 상하이의 부동산회사 펑신은 호주 최대 목장기업 S.키드먼으로부터 10만㎢의 부지를 통째로 매입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호주 전체 영토의 1%에 맞먹는 규모다. 다싱, 푸청 등 중국 기업들도 올해 호주 농업 분야에 2억6000만호주달러 규모의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중국의 억만장자이자 제약사 산둥루예 회장인 류뎬보는 최근 호주의 3대 사립병원인 헬시케어를 9억2800만호주달러에 인수했다.

지난달 11일 중국을 방문한 맬컴 턴불 호주 총리는 역대 최대 규모인 1000여명의 비즈니스 사절단과 동행했다. 관광, 교육 분야의 중국 수요를 더 확대하기 위해서다. 호주의 원자재 업체 역시 중국에서 새로운 수요를 찾고 있다. 멜버른에서 만난 세계 최대 광물회사 BHP빌리턴의 제임스 애거 부사장은 “중국의 농업생산성 증가를 겨냥해 칼륨 비료 생산으로 돌파구를 찾을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중국 의존도 심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원자재시장처럼 자칫 호주 경제에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어서다. 시드니모닝헤럴드는 “호주는 서구 경제권 가운데 중국에 가장 의존하는 국가”라며 호주가 리스크에 처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파이낸셜리뷰도 “중국이 바뀌면 호주도 바뀌어야 한다”며 “중국의 교육, 관광 등 대체 수요가 원자재 침체의 골을 메우는 건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호주중앙은행(RBA)의 행보는 중국을 바라보는 호주의 복잡한 속내를 잘 보여준다. RBA는 지난 3월1일 기준금리 동결을 위해 이사회를 열었을 때 중국과 관련한 토론에 가장 많은 시간을 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16일에는 중국발 부동산시장 과열이 시중은행 부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시드니·멜버른=이정선 기자 sun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