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과 정유경 신세계백화점 총괄사장이 각자 보유한 신세계와 이마트 지분을 전량 맞바꾸면서 남매가 핵심 계열사를 각각 나눠 맡는 책임경영 체제가 마련됐다. 정 사장의 경영능력이 본격적으로 검증받게 될 것이란 분석이다. 이마트와 신세계의 최대주주인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이 ‘남매 경영’의 성과에 따라 후계 구도를 구체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백화점 경영 전면에 나선 정유경…신세계그룹 '남매 경영' 본격화
○경영 전면에 나선 정유경 사장

신세계그룹의 책임경영 체제가 가시화된 것은 작년 말 정기인사 때다. 신세계그룹은 지난해 12월 그룹 산하에 이마트 부문과 백화점 부문을 신설했다. 그룹 직속으로 있던 전략실은 인사·재무·감사 기능만 남기고 기획·개발·홍보·사회공헌 등의 기능을 이마트와 백화점 부문으로 각각 분리했다.

그룹 경영 전면에 나섰던 정 부회장에 비해 상대적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정 사장이 경영활동을 본격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정 사장은 4000억원가량이 투자된 신세계백화점 강남점과 센텀시티점 증축의 마무리 작업을 주도했다. 정 사장의 첫 작품으로 꼽히는 강남점은 지난 3월 리뉴얼한 뒤 10일 만에 200만명의 고객을 끌어모으는 등 성과를 내고 있다.

정 사장은 경기 하남, 경남 김해, 대구점 신규 개장도 직접 챙기고 있다. 다음달 본점에 문을 여는 시내면세점 사업도 진두지휘하고 있다. 부진에 빠진 화장품 계열사 비디비치코스메틱을 패션 계열사 신세계인터내셔날에 흡수 합병시키는 등 백화점 부문 계열사의 체질 개선도 시도하고 있다.

○정용진 부회장은 이마트에 집중

백화점 부문이 정 사장 체제로 개편됐지만 정 부회장의 그룹 내 영향력은 여전히 막강하다는 게 유통업계 안팎의 분석이다. 이마트의 지난해 매출은 13조6399억원으로 신세계(2조5639억원)보다 5배가량 많은 데다 주력 계열사들도 이마트 부문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신세계 계열사 30여개 중 이마트 소속은 20여개에 이른다. 이마트는 2023년까지 5조원대 계열사로 키울 예정인 주력 계열사 신세계푸드를 비롯해 신세계조선호텔, 에브리데이리테일, 스타벅스커피코리아, 위드미FS 등의 최대주주다. 신세계그룹의 올해 최대 역점 사업 중 하나인 복합쇼핑몰 하남 스타필드 사업을 맡고 있는 신세계 프라퍼티도 이마트 계열사다.

정 부회장은 그룹의 주력 사업인 이마트 사업 안정화와 함께 계열사 간 시너지를 내는 데 주력하고 있다. 특히 신세계푸드가 생산하는 ‘피코크’ 식품 브랜드를 강화해 이마트의 경쟁력을 높일 계획이다. 또 남성을 겨냥한 가전 전문점인 일렉트로마트와 인테리어 전문점 더라이프, 몰리스 펫샵 등을 통해 차별화된 유통모델을 보여주는 데 주력할 방침이다.

○성과에 따라 후계구도 변화 가능성

정 부회장과 정 사장이 이마트 부문과 백화점 부문을 책임지는 구도가 마련됐지만 신세계그룹의 후계구도가 남매가 계열사를 나눠 맡는 형태로 굳어진다는 전망은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마트와 신세계의 최대주주인 이 회장이 이번 지분 조정을 통해 아들과 딸의 경영 능력을 시험해보려 한다는 분석이 많다.

이 회장은 이마트와 신세계 주식 18.22%를 각각 보유한 최대주주다. 이번 거래에서도 정 부회장과 정 사장의 지분만 맞교환시켰을 뿐 본인의 지분을 정 부회장과 정 사장에게 증여하지 않았다. 앞으로 두 사람의 경영 성과를 면밀히 따져보고 지분을 증여할 것이란 얘기다.

재계 관계자는 “그동안 정 사장은 경영 능력을 제대로 보여줄 기회가 없었다”며 “앞으로 정 사장이 신세계 경영에 본격 참여한 뒤 그 결과에 따라 신세계 후계구도가 달라질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