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롤스로이스
“시속 60마일(100㎞)로 달리는 신형 롤스로이스 안에서 들리는 가장 큰 소음은 전자시계 소리입니다.” 미국 광고계의 전설인 데이비드 오길비가 1958년 만든 롤스로이스 광고 카피다. 오길비의 탁월한 카피 덕에 롤스로이스는 세계적으로 유명해져 매진 사태를 빚었다. 이 광고를 본 롤스로이스 엔지니어가 “그 망할 놈의 시계를 손봐야겠다”고 해서 더욱 화제를 모았다.

마이바흐, 벤틀리(또는 캐딜락)와 함께 세계 3대 명차로 꼽히는 롤스로이스(Rolls-Royce)는 20세기 영국의 자존심이었다. 귀족 출신 자동차 딜러 찰스 롤스와 엔지니어 헨리 로이스가 1904년 파리 모터쇼에서 첫 모델을 공개해 ‘조용한 차’로 명성을 얻었다. 이들은 1906년 정식 회사를 설립했다. R이 두개 겹쳐진 롤스로이스 로고는 설립자들의 이니셜이다.

‘달리는 성(城)’이란 별명을 가진 최고급 팬텀 시리즈는 크기부터 집채만 하다. 12기통 엔진에 배기량이 6749㏄, 무게는 2.5t에 이른다. 4~5초 만에 시속 100㎞까지 가속하고 최고속도는 240㎞다. 최하위 모델이 4억원이고 팬텀 시리즈는 7억~8억원대를 호가한다. 그럼에도 맞춤 제작(비스포크)으로 ‘나만의 명차’를 꾸밀 수 있어 마니아층이 두텁다.

명차다운 특징이 흥미롭다. 앞면 흡기구는 파르테논 신전을 본떴다. 롤스로이스의 상징인 엠블럼 ‘환희의 여신상’은 가격이 500만원을 넘는다. 시동을 끄거나 충격이 가해지면 엠블럼이 후드 속으로 숨어 도난을 예방한다. 차문에 꽂혀 있는 테플론 코팅된 우산은 옵션가격이 200만원에 이른다. 뒷문은 경첩이 달려 있어 마차 문처럼 뒤로 열린다. 머리를 숙이지 않고도 탈 수 있다.

롤스로이스는 1930년대 벤틀리를 인수했고, 영국 왕실 의전차로 명성을 날렸다. 항공기 엔진사업에 진출해 GE에 이어 세계 2위까지 오르며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1971년 콩코드 여객기 등 제트엔진 경영난으로 도산해 국유화됐다. 1973년 자동차 부문이 영국 비커스사에 매각됐고 비커스는 다시 1998년 롤스로이스를 BMW에, 벤틀리는 폭스바겐에 넘겼다. 비록 독일 업체 소유가 됐지만 롤스로이스는 여전히 영국적 전통을 유지하며 럭셔리 카로 건재하다.

어제 롤스로이스가 뜬금없이 국내에서 화제에 올랐다. 엽기 대선후보로 유명한 허경영 씨가 7억원대 롤스로이스 팬텀 리무진을 몰다 3중 추돌사고를 낸 게 뒤늦게 알려진 것이다. 허씨는 리스로 몰았다는데 리스료만도 월 800만원이라고 한다. 네티즌의 반응이 재밌다. “축지법을 쓴다는 그가 왜 차를 몰고 다니지?”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