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칼럼] '미들테크'의 재발견
30년 전인 1986년 1월28일 우주왕복선 챌린저호가 공중 폭발했다. 발사 73초 뒤 연기와 함께 사라지면서 일곱 명의 승무원 전원이 사망했다. 조사 결과 ‘오링(O-ring)’ 불량이 원인으로 밝혀졌다. 오링은 기계부품 이음매에서 기체가 새지 않도록 하는 고무 패킹이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오링 문제를 미리 알았다는 고백이 최근 나와 관심을 끌고 있다. 추운 날씨 때문에 오링이 제 역할을 못할 것이라는 기술자들의 경고를 무시하고 발사를 강행했다가 사고가 났다는 것이다. 우주왕복선은 첨단기술 집합체이지만 고무 부품인 오링을 첨단 부품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런 ‘미들테크(middle-tech: 중간기술)’ 부품은 첨단제품을 완성하는 데 필수 불가결한 존재다.

일본에서 쇠깎는 국내 기업들

미들테크는 부가가치 창출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일본 히가시오사카에 있는 하드록을 보자. 종업원 40여명인 이 회사가 만드는 제품은 너트다. 하지만 ‘풀리지 않는 더블너트’를 개발해 세계 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원리는 간단하다. 너트와 볼트 사이에 쐐기를 끼우면 풀리지 않는데, 이를 이중너트로 해결한 것이다. 먼저 끼우는 너트에 경사면을 만들어 이를 뒷너트가 물고 들어가게 설계했다. 이 제품은 일본의 신칸센이나 모노레일 교량 등에 부품으로 들어가고 세계 각국으로 수출되고 있다. 이 회사의 와카바야시 가즈히코 사장은 “미들테크로도 얼마든지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4000여개의 중소기업이 밀집해 있는 도쿄 오타구에는 수시로 한국의 대기업 관계자들이 찾아온다. 미세금속가공기술을 찾기 위해서다. 한국에선 마이크로미터(㎛) 단위의 초정밀 금속가공을 하는 중소기업을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7000여개의 중소기업이 모여 있는 히가시오카사에도 마찬가지다.

IT·BT도 중요하지만…

첨단기술을 자랑하는 도시바 샤프 등의 사업부가 팔려 나가도 이들 업체는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여기엔 부품 소재 도금 열처리 주물 단조기업 등이 포함된다. 이들은 남들이 따라올 수 없는 독보적인 기술력으로 승부를 건다. 히가시오사카의 금속가공업체 아오키는 쇠를 깎아 혈관 속에 삽입하는 ‘스텐트(stent)’를 비롯해 항공기 부품, 우주선 부품을 제조해 보잉과 NASA에 수출한다.

중요한 것은 미들테크에 어떤 아이디어를 접목시키느냐 하는 것이다. 여기엔 신제품이나 새로운 용도 개발, 신시장 개척 등이 포함된다. 미들테크 산업은 산업의 뿌리이자 중추다. 이 기술이 없으면 첨단제품을 완성하지 못한다.

그런데도 언젠가부터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는 정보기술(IT), 바이오기술(BT) 등 ‘첨단 산업’에만 관심을 쏟는다. 물론 하이테크가 중요하다. 하지만 모든 기업이 정보통신, 바이오사업을 영위할 수는 없지 않은가. 미들테크에 대한 로드맵도 필요하다. 이 분야는 고용 효과도 크기 때문이다. 골드러시가 일어난 19세기 캘리포니아에서 정작 돈을 번 기업은 청바지업체 리바이스였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동안 가장 가파르게 성장한 기업은 중저가의류업체 유니클로와 비즈니스호텔체인인 토요코인이었다는 점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김낙훈 중소기업전문기자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