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살아난 '한국형 양적완화' 논쟁…찬반 팽팽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6일 ‘한국형 양적 완화’에 대해 “긍정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발언한 뒤 양적 완화 논쟁의 불씨가 재점화되는 모양새다. 한국형 양적 완화는 지난 총선 과정에서 새누리당이 내놓은 공약으로,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해 기업 구조조정을 지원하고 가계부채를 해소하자는 내용이다. 구체적으로 한은이 산업은행의 산업금융채권(산금채)과 주택금융공사의 주택담보대출증권(MBS)을 직접 인수하는 방식을 제시했다.

선거에서 여당이 패배하면서 양적 완화 논의는 수면 밑으로 내려가는 듯했으나 박 대통령의 발언에다 조선·해운 구조조정을 주도하는 금융위원회가 한은에 국책은행에 대한 자본 확충 지원을 공식 요청하면서 다시 논쟁이 되고 있다. 전문가들 간에도 찬반 양론이 팽팽하다.

27일 바른사회시민회의가 한국형 양적 완화를 주제로 연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은 자금 조달을 통해 기업 부실을 털고 구조조정을 가속화해야 한다는 점에는 의견을 같이했지만 통화당국을 동원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찬반 의견이 엇갈렸다.
되살아난 '한국형 양적완화' 논쟁…찬반 팽팽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형 양적 완화에 대해 “과잉 처방”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양적 완화는 금리를 더 이상 내릴 수 없는 상태에서 마지막으로 선택하는 정책”이라며 “한국 경제가 비전통적 통화정책을 쓸 만큼 절박한 위기에 처했다고는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기업 구조조정 본격화에 따라 대규모 자금 수혈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공감했다. 조 교수는 “산은과 수출입은행이 떠안은 조선·해운업종 부실 기업의 위험노출액이 21조원을 넘는다”며 “자본 확충을 위해서는 산은의 후순위채 발행이 현실적인 대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후순위채는 보완자본으로 인정돼 자금을 조달하면서 자기자본비율도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조 교수는 다만 한은의 산은에 대한 직접 출자는 고려할 만하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그는 “수출입 은행에 대한 한은 출자는 지금도 가능하지만 산은에 대한 출자는 산은법을 개정해야 하는 문제”라며 “국회에서 법을 개정하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특임교수 역시 ‘한은의 산은 채권 매입’을 통한 한국형 양적 완화에 반대 의견을 나타냈다. 그는 “기업 구조조정을 지연시키며 조선·해운산업을 이 지경으로 만든 건 산은”이라며 “구조조정 능력이 아직 검증되지 않은 산은에 자금을 대는 건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격’”이라고 지적했다.

오 교수는 산은 채권을 매입하는 대신 예금보험공사 채권을 매입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과거에도 예보 채권을 매입해 예보가 은행 자금을 지원해준 전례가 있었다”며 “부실채권정리기금의 채권을 매입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양적 완화 통해 시장 안정”

한국형 양적 완화를 통해 금융시장 안정화를 도모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한은의 목적 중 하나가 금융시장 안정화라는 점에서 이번 한국형 양적 완화를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구조조정 자금 수혈은 은행들이 보유한 부실채권의 불확실성을 줄여줘 금융 안정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양 교수는 “부실채권을 일정한 비율로 평가절하하고 유동화시켜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을 제거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한국 가계대출은 아직도 만기 시 대규모로 대출 금액을 상환해야 하는 비율이 높아 안정성에 취약한 구조”라며 “이를 20년 원리금 상환 대출로 전환해 가계부채 안정성을 향상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양 교수는 ‘한국형 양적 완화’는 일본 등이 단행한 일반적 양적 완화와 달리 특정 구조조정 관련 채권만 매입하도록 돼 있어 시중에 무차별적으로 돈을 푸는 ‘국채의 통화화’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은 낮다고 강조했다. 이어 “미국처럼 수년에 걸쳐서 하기보다는 일시적으로 단기간에 하는 게 맞다”고 강조했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