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법조인이 될 길은 두 가지가 있다. 사법시험에 합격하는 것과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을 나와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는 것이다. 현행법에 따르면 사법시험은 2017년 폐지될 예정이다. 이에 따라 법조계 종사를 희망하는 이들 사이에 로스쿨에 대한 관심이 높다.

2009년 도입된 로스쿨 정원은 총 2000명이다. 전국 25개 대학에서 운영 중이다. 로스쿨 입학자격은 4년제 대학 학사학위 소지자 및 취득 예정자다. 법령에 의해 학사학위와 동등한 학력이 있다고 인정된 사람도 로스쿨에 지원할 수 있다. 지난해 로스쿨 지원자는 9404명으로 경쟁률은 4.7 대 1이었다. 로스쿨에 입학하기 위해선 학점, 공인영어성적, 서류 및 자기소개서 등을 제출해 통과해야 하고, 법학적성시험(LEET)과 면접 등을 거쳐야 한다. LEET는 매년 8월 말 치른다.

3년의 로스쿨 과정을 마치면 마지막 관문인 변호사시험을 통과해야 법조인이 될 수 있다. 변호사시험은 매년 1월 초 나흘간 치러진다. 시험과목은 공법, 민사법, 형사법, 전문분야 등 8개다.

법무부는 지난 21일 제5회 변호사시험 합격자 1581명을 발표했다. 올해 응시자(2864명) 대비 합격률은 55.2%로 전년(61.11%)보다 낮아졌다. 로스쿨 출신으로 변호사시험에 합격한 조성원 변호사(41·1회 합격)와 강성민 변호사(31·4회 합격)를 만나 로스쿨 출신 변호사의 삶과 꿈을 들어봤다.

“변호사시험 공부법 무료 전수…지금은 12개 로스쿨서 강의”

성균관대 로스쿨 4기 강성민 변호사
97등 입학→6등 졸업
‘나만의 공부법’ 정리한 변시 수험서 입소문


강성민 변호사
강성민 변호사
“사람을 살리고, 소외받는 이들을 돕는 변호사가 되자.”

2014년 12월25일. 로스쿨 변호사 시험을 앞두고 있던 강성민 씨(32)는 성균관대 로스쿨 동기(4기)들과 함께 이렇게 다짐했다. 그렇게 뜻을 세운 강씨는 지난해 말 제4회 변호사시험에 합격했다.

2012년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한 그의 1학기 성적은 120명 중 97등. 3학년 2학기 땐 6등으로 올라섰다. 그는 “지방대(부산대 언어정보학과) 출신이 서울 명문대를 나온 이들과 경쟁해 상위권으로 졸업하고 변호사시험에 합격했다는 건 기적 같은 일”이라며 자랑스러워했다.

강 변호사가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었던 배경엔 그만의 공부법이 있었다. “로스쿨에 다니는 동안 매일 아침 기상 후, 저녁 잠들기 전 각각 30분씩 그날 공부한 걸 눈을 감고 머릿속에서 정리했습니다. 처음엔 어렵지만 계속하다 보면 희미하게 알던 지식을 명확하게 하는 장점이 있습니다.”

강 변호사는 자신의 공부법과 노트를 후배들에게 전해주고 싶었다. 로스쿨을 다닐 때 그가 정리한 노트는 《상법 엑기스1, 2》 《민사기록 엑기스》 《공법기록 엑기스》란 이름으로 작년에 출간됐다.

네 권의 변호사시험 대비서는 나온 지 1년밖에 안 됐는데도 로스쿨 학생들 사이에 벌써 입소문이 났다. 법무법인 청조에서 근무 중인 강 변호사에게 성균관대, 부산대를 비롯한 전국 12개 로스쿨에서 강의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지 1년 만에 ‘스타 변호사’이자 ‘스타 강사’가 된 것이다.

변호사가 된 뒤에도 주말을 이용해 여러 곳에서 강의하고 있는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제4회 변호사 시험에 탈락한 동료를 위한 강의다. 지난해 5월부터 매주 월요일마다 하루 6시간씩 로스쿨 동기들을 위해 무료 강의를 하고 있다.

4명이 듣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16명까지 늘었다. 강 변호사는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아 변호사가 됐기 때문에 그 빚을 갚고 싶었다”며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부산 출신으로 목사 아버지를 둔 강 변호사는 집안이 넉넉지 못했다. 서울에서 로스쿨 생활을 꿈꿀 수 없는 형편이었다.

성균관대 로스쿨과 부산대 로스쿨 두 곳에 합격했지만 고민이 컸다. “로스쿨을 졸업하면 빚만 1억원이 되겠구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는 경제적으로 고민하는 로스쿨 준비생들에게 “로스쿨에는 경제환경 장학금이 있으니 미리 돈 걱정부터 할 필요 없다”고 당부했다. 강 변호사도 로스쿨을 다니면서 세 차례 경제환경 장학금을 받았다.

매년 1500명 이상의 변호사가 쏟아지는 시대. 강 변호사는 “돈을 좇기보다 실력을 키우고, 특권의식은 버리는 변호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실력이 없는 변호사가 의뢰인을 받는 건 불행입니다. 돈을 벌기 위해 변호사 공부를 해서는 안 됩니다. 실력을 키워야 의뢰인의 인생을 책임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업 부도가 터닝 포인트…신용불량자가 변호사 됐죠”

전남대 로스쿨 1기 조성원 변호사
돈 없어 司試 2차 포기
“로스쿨 장학금 덕에 흙수저인 나도 혜택”


 조성원 변호사
조성원 변호사
‘변호사가 된 파산자.’

로스쿨 출신 변호사를 취재하기 위해 접촉한 조성원 변호사(41)로부터 이런 제목의 이메일과 이력서를 먼저 받았다. 관심을 확 불러일으키는 제목 때문에 그가 보내온 이력서를 끝까지 읽었다.

그가 변호사가 되기까지는 굴곡이 많았다. 원광대 법학과에 1993년 입학했지만, 졸업은 10년 후인 2002년에야 할 수 있었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집안의 가장 노릇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는 대학을 다니면서 과외, 방문교사, 공사장 일용직 등 아르바이트를 닥치는 대로 하며 생활비를 벌었다.

내리막길만 있었던 건 아니다. 결혼 후 사업을 하는 장인의 도움으로 영어학원을 운영하면서 사장님 소리도 들어봤다. 하지만 학원 개설 후 3년 만에 장인의 사업이 망하면서 보증을 선 조 변호사도 신용불량자가 됐다.

밑바닥에서 기회를 잡기 위해 응시한 사법고시 1차에 합격했지만, 2차시험 준비를 위해 시작한 서울 신림동 고시촌 생활은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두 달여 만에 접어야 했다. 법조인의 꿈을 포기하려던 무렵 로스쿨제도가 생겼다.

전남대와 전북대 로스쿨 생활수급자 특별전형에 지원한 그는 두 곳 모두 합격해 3년간 전액 장학금 제의를 받았다. 그는 전남대 로스쿨을 선택했다. 조 변호사는 “로스쿨은 등록금이 비싸 ‘금수저’만 가는 줄 알았는데 ‘흙수저’인 사람에게도 법조인의 꿈을 실현시켜 줬다”고 말했다.

로스쿨은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 장애인, 탈북자 등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특별전형이 있다. 일정 조건(학점)을 유지하면 로스쿨 재학 3년간 장학금을 받을 수 있다.

조 변호사는 로스쿨 1기 출신으로, 2012년 제1회 변호사시험에 합격했다. 법조인의 꿈을 안고 법대에 입학한 지 20년 만이었다. 조 변호사는 고향인 전북 군산에서 개인 법률사무소를 설립해 운영했다. 작년에는 군산에 있는 법무법인 청윤의 대표변호사가 됐다.

조 변호사는 로스쿨이 변호사시험을 준비하는 학원처럼 변하고 있는 데 대해 안타까워했다. “로스쿨의 다양한 법률 수업과 특성화 수업이 점차 사라지고 있는 것 같아요. 변호사시험에서 전공과목 숫자를 줄이고, 선택과목을 늘리는 게 법조계의 다양화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조 변호사는 “매년 변호사시험 응시자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법무부가 응시인원이 아니라 입학 정원을 기준으로 합격자를 산정하고 있는 현행 제도를 바꿀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변호사로서 능력과 실력을 갖춘 사람들이 번번이 고배를 마시는 걸 보면 많이 안타까워요. 객관적으로 실력을 검증할 필요가 있지만, 합격 인원을 기계적으로 정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조 변호사에게 어떤 변호사가 되고 싶은지 묻자 올초 돌아가신 어머니의 유언을 들려줬다. “어머니께선 항상 ‘바르게 돈 벌어라’고 하셨어요. 매 순간 바르게 돈을 벌며 이 사회가 변호사에게 갖고 있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변호사가 되기 위해 살겠습니다.”

공태윤 기자 true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