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재 칼럼] 디젤이 어쩌다 친환경차가 되었나
아무도 산성비가 헛소문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않는다. 이 좋은 봄비를 피해 지금도 화분을 들여놓는 사람들이 있다. 편리한 두뇌는 소동만 기억한다. 《침묵의 봄》이라는 레이첼 카슨의 겁나는 DDT 소동이 과장된 추리의 연쇄 반응이며, 결국 공장 문을 다시 열었다는 사실도 그렇다. 대부분의 환경호르몬 물질이 지정 해제됐다는 사실도 마찬가지다. 생물의 대거 멸종 주장이 작은 지역의 연구에 지구 표면적을 곱하는 식의 계산 결과라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극소수다. 지식이 확대될수록 무지도 확대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과학이 확장되면 그 명제를 신줏단지처럼 모시는 미신도 동일하게 확장되는 모양이다.

지난 주말 독일 교통부의 디젤차 배기가스 조사 발표는 흥미 만점이었다. 미국이 폭스바겐에 이어 벤츠에까지 배기가스 조사를 시작하자 우리만 당할 수 없다며 맞불을 놓는 양상이었다. 독일에서 팔리는 53개 디젤차량의 배기가스를 조사한 결과 22개 모델에서 온도가 낮을 때 저감장치가 작동을 멈추면서 배기가스가 기준치를 초과해 배출되는 오류가 발견됐다는 것이다. 벤츠 등 5개 독일차를 비롯 포드, 닛산, 그리고 현대자동차도 포함됐다. 침묵해왔던 독일의 잘 준비된 반격일 수도 있다.

폭스바겐 사건 자체가 미국의 ‘기획’이라는 당초 해석도 없진 않았다. 그리스 문제에 가장 강경했던 독일에 대해 제기됐던 불평은 “어! 독일. 많이 컸군”이었다. 독일 때리기는 오바마가 주도했고 언론도 가세했다. 그리스인들은 ‘메르켈은 히틀러의 딸’이라는 루머까지 만들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도배질했다. 그 와중에 폭스바겐 사건이 터졌다. 당연하다는 듯 미국이 독일을 손본다는 루머가 돌았다. 미국 법정은 지난 주초 폭스바겐에 10억달러 배상금에, 48만대 리콜을 명령했다. 1차 합의였다.

유럽이 디젤을 친환경차로 둔갑시켜온 과정 자체가 실은 은밀한 기획의 화려한 성공일지도 모른다. 질소산화물과 미세먼지가 배제되거나 과소평가되면서 디젤은 서서히 친환경차로 둔갑했다. 네덜란드는 진보 국가답게 CO₂에 벌금을 매기는 선도국으로 떠올랐다. CO₂ 벌금을 차량 가격의 25%까지 올린다는 것이다. 유럽의 차량 CO₂ 목표는 연차별로 배분되고 유로 5, 유로 6등 단계별로 정밀한 수치가 제시되면서 유사과학적 구조를 갖추게 됐다. 2019년부터는 CO₂ g당 95유로를 매기는 중벌금이 기다린다.

문제는 디젤차 소동이 ‘CO₂만 아니면 된다’는 편집병적 오류에 기초해 있다는 것이다. 그 역사는 꽤 길다. 1992년 리우회의는 CO₂ 캠페인의 지구적 출발이었다. 1997년 교토의정서가 바통을 받았고 작년 말 파리 세계기후변화 당사국 총회는 그 모든 것의 종합이었다. 마침 지난주 뉴욕 UN본부에서 파리협약 조인식 행사가 벌어졌다. CO₂ 배출을 줄이기 위해 삶을 삭감하는 퇴행의 기념비가 될 수도 있다.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를 늘릴수록 석탄 발전소도 늘어나는 역설이 나타난다. 독일이 그런 나라다. 신재생의 비효율을 석탄으로 받치고 있는 것이다.

CO₂에 대해서는 주장만큼이나 많은 반론도 제기된다. CO₂ 캠페인은, 어디서 나왔는지 출처가 의심스런 수많은 과장된 수치들을 기초로 사람들에게 공포감을 심어왔다. 심지어는 남극의 빙산이 녹아 도시 주택의 안방까지 치고 들어온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온난화는 역설적이게도 식량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세계 정치무대의 흥행카드가 바로 온난화요 CO₂다. 과학계도 이 분야를 연구해야 비로소 연구비 걱정에서 벗어난다. 언론도 그렇다. 소위 ‘예산의 기득권 구조’가 구축돼 있는 것이다.

한국의 디젤차는 이미 전체 등록차량의 41%다. 신차는 더 그렇다. 수도권 인공오염물질의 절반이 경유차 때문이라는 국립환경연구원 통계는 종종 무시된다. 미세먼지는 중국 탓으로만 돌리면 내수 정치에서는 해결된다. 그리고 정부는 여전히 CO₂만 쳐다본다. 환경부는 2009년부터 디젤차를 친환경차에 포함시켜 육성해왔다. 한 번 각인된 CO₂ 편향성은 쉽게 교정되기 어렵다. 오류도 인간 뇌의 한 부분이다.

정규재 주필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