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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갑상샘암 일부를 암 분류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관련 위원회 결정이 나오면서 갑상샘암을 둘러싼 논쟁이 재점화되는 분위기다. 미국 피츠버그 의대는 미국 국립암연구소(NCI)의 의뢰를 받아 갑상샘암 관련 위원회를 구성해 기존 갑상샘암 중 ‘여포성 변형이 있는 유두암’을 암이 아닌 종양으로 바꾸기로 했다. 15년간 재발률이 1%에 불과할 정도로 극히 낮고 종양 세포가 다른 곳으로 침투하지 않아 전이될 위험이 없다는 것이다.

그동안 ‘여포성 변형이 있는 유두암’ 진단을 받은 환자는 미국 갑상샘암 환자의 10~20% 정도다. 미국에서 연간 갑상샘암으로 진단받는 환자는 6만5000명가량이다. 이 중 약 1만명이 암이 아닌 종양 판정을 받는 것으로 보인다.

관련 소식이 전해지면서 갑상샘암 환자는 혼란에 빠졌다. 수술을 앞둔 환자들이 정말 수술을 받아야 하는 암에 걸린 것인지 의료기관에 묻는 일도 늘었다. ‘착한 암’으로 불리는 갑상샘암이지만 스스로 판단해 치료를 미루면 다른 장기로 전이되거나 부작용 등이 생길 수 있다. 갑상샘암의 특징과 진단 치료법 등에 대해 알아봤다.
수술 필요 없는 착한 암? 내버려 두면 나쁜 암 돌변 할 수 있어요
과다 진단 vs 그냥 두면 위험한 암

갑상샘은 목젖 바로 밑에 있는 나비 모양의 기관이다. 가로 길이가 4㎝ 정도로 큰 편은 아니지만 우리 몸의 신진대사에 필요한 호르몬을 만드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갑상샘이 만든 호르몬은 리모컨처럼 체온, 심장박동, 호흡, 위와 장의 운동 등을 실시간으로 조절한다.

갑상샘에 악성 종양이 생기는 것을 갑상샘암이라고 한다. 대부분 특별한 증상이 없지만 일부 환자는 결절이 만져지기도 한다. 압박 때문에 쉰 목소리가 나거나 음식을 삼키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갑상샘암은 국내에서 환자가 가장 많은 암이다. 국내에서는 한 해 4만2000명 정도가 갑상샘암 진단을 받는다. 한국 여성의 갑상샘암 진단 비율은 세계 평균의 10배 정도다. 이 때문에 일부 의사는 초음파 검사가 늘면서 갑상샘암이 과다 진단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진단이 쉬워지면서 불필요한 암을 찾아내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 갑상샘암 환자의 5년 이상 상대 생존율은 100%를 넘는다. 갑상샘암 환자는 암에 걸리지 않은 사람보다 생존율이 높다는 의미다. 하지만 갑상샘암 환자는 수술을 통해 갑상샘을 제거하고 평생 호르몬제를 먹는 치료를 받아야 한다. 이 때문에 갑상샘암 상당수가 암 분류에서 제외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반면 갑상샘암 수술을 하는 의사들은 모든 갑상샘암이 착한 암은 아니라고 경고한다. 비교적 예후가 좋은 갑상샘 유두암도 1, 2기 생존율은 100%에 가깝지만 4기가 되면 생존율이 50%까지 떨어진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갑상샘암 환자 중 1%에게만 발견되는 역형성암은 진단 후 몇 달 안에 사망하는 일도 있다.

권형주 이대목동병원 유방암·갑상선암센터 교수는 “갑상샘암도 내버려두면 위험한 암이라는 점을 간과하면 안 된다”며 “발견 후 수술이나 치료가 필요한지 등을 스스로 판단하지 말고 전문의와 상담해 결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5㎜ 이하 크기는 수술 않기도

갑상샘암은 초음파 검사를 통해 종양 유무와 크기, 위치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종양이 있으면 주사기로 약간의 세포를 뽑아내 검사하는 세포흡인검사를 통해 암 여부를 알아볼 수 있다. 림프샘 전이 유무를 파악하기 위해 컴퓨터 단층촬영(CT)을 하기도 한다.

암 크기가 5㎜ 이하이고 림프샘으로 전이되지 않았다면 당장 수술하지 않고 능동감시를 하기도 한다. 1년에 한 번 이상 초음파 추적 검사를 하며 암이 커지는지 등을 지켜보는 것이다. 만약 암 크기가 커지거나 진행 양상에 변화가 있으면 수술 여부를 다시 결정해야 한다.

크기가 작다고 무조건 수술이 필요 없는 건 아니다. 미세한 암이더라도 종양이 신경 가까이에 붙어 있거나 림프샘 전이 등이 있으면 수술이 필요할 수도 있다.

윤정한 대한갑상선내분비외과학회장은 “갑상샘암을 초기에 발견해 수술할수록 수술로 인한 합병증 및 재발률 감소에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학회에서 갑상샘암 수술을 받은 환자 1만8612명을 분석한 결과 암 크기가 1㎝ 미만이었을 때 수술한 경우보다 1㎝ 이상~2㎝ 미만일 때 수술한 환자의 재발 위험도가 1.77배 높았다. 2㎝ 이상~4㎝ 미만일 때, 4㎝ 이상일 때 수술한 환자는 재발 위험도가 각각 4.54배, 6.69배 증가했다. 림프샘 전이가 있으면 재발 위험이 1.5배로 증가했고 림프샘을 많이 떼야 할 땐 8.3배 증가했다.

세브란스병원에서 최근 갑상샘암 입원 환자의 의료비용을 분석한 결과 갑상샘암 반절제 수술을 받은 환자는 평균 550만원의 의료비를 썼지만 전절제 수술과 방사성 요오드 치료 1회를 받은 환자는 970만원을 지출했다. 갑상샘암이 재발해 재수술을 받고 표적치료까지 받으면 평균 의료비가 5800만원으로 초기 치료 때보다 10배 넘게 증가했다.

장항석 대한갑상선내분비외과학회 학술이사는 “초기에 간단한 수술로 가능한 것도 치료 시기를 놓치면 비용적 손실과 수술 범위, 수술 횟수의 부담이 늘어난다”며 “환자 삶의 질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동위원소 치료 아니면 해조류 섭취 무방

갑상샘암으로 진단되면 환자 상당수는 갑상샘을 절제하는 수술을 받는다. 수술 후 재발을 줄이기 위해 갑상샘 호르몬도 복용한다. 갑상샘을 모두 절제했다면 호르몬이 자연적으로 생성되지 않기 때문에 갑상샘 호르몬을 반드시 복용해야 한다.

종종 수술 후 목소리에 변화가 생기거나 갑상샘 뒷부분의 부갑상샘 기능이 저하되는 일이 있다. 특별한 이상이 없다면 수개월 내에 회복되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수술 후 회복을 위해 균형 잡힌 식습관을 유지하고 적절한 운동을 해야 한다. 미역, 다시마 등 해조류가 갑상샘암 재발을 부추긴다며 먹지 않는 환자도 있다. 동위원소 치료 기간이 아니면 입맛에 따라 원하는 대로 식사해도 된다.

갑상샘암에 걸렸던 환자는 재발 위험을 줄이기 위해 정기 검사를 받아야 한다. 혈액검사를 통한 종양 표지자 검사, 요오드 전신 스캔, 갑상샘 초음파 등으로 재발 여부를 점검할 수 있다. 갑상샘암은 진행이 느려 뒤늦게 재발하는 특성이 있다. 최소 10년의 관찰 기간이 필요하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