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의도 증권맨들에게 서울남부지방검찰청 검사들은 ‘저승사자’로 통한다. 지난 3년간 남부지검 증권범죄합동수사단(합수단) 수사로 회사 동료들이 잡혀가는 장면을 눈 뜨고 지켜봤기 때문이다. 2013년 5월 주가조작 등 불공정거래를 없애기 위해 합수단이 발족된 이후 수사 강도를 높이면서 여의도 분위기는 살얼음판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합수단의 다음 타깃이 어디일지 다들 긴장하고 있다”며 “남부지검이 자리잡은 양천구 목동 근처에 얼씬도 하지 말라는 말도 있다”고 전했다.

요즘엔 주식 브로커나 인수합병(M&A)·사모투자펀드(PEF) 전문가들이 좌불안석이다. 합수단이 올해 이 분야의 불공정거래를 집중 점검할 것이란 소문이 돌면서다. 지난해엔 채권시장이 발칵 뒤집혔다. 합수단은 채권 브로커와 펀드매니저의 불법 공생 관계를 파헤쳤다. 증권사 영업직원은 채권 중개매매 수수료를 따내기 위해 펀드매니저들에게 각종 금품과 향응을 제공했다. 펀드매니저의 가족이나 애인, 유흥업소 여종업원을 동반한 해외여행 비용까지 대납한 비리가 적발됐다. 증권사 직원과 펀드매니저 등 기소된 인원만 148명이다.
[경찰팀 리포트] '여의도 은밀한 거래', 남부지검 앞에선 줄줄이 '아웃'
금융범죄 수사 인력 두 배로

남부지검의 무관용 원칙은 기소 실적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자본시장법을 위반한 혐의로 기소된 피의자 수는 합수단 발족 후 3년간 1290명으로 발족 이전 3년 실적(1175명)보다 10%가량 증가했다. 이 기간 구속된 인원은 302명으로 종전(95명)보다 세 배 이상으로 급증했다.

서울 남부지검이 금융범죄 중점청으로 지정되면서 합수단은 한층 더 힘을 받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소속으로 출범한 합수단은 이듬해인 2014년 서울 남부지검으로 소속을 옮겼고, 지난해 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 1·2부까지 남부지검으로 이전하면서 금융 범죄 관련 수사력이 집중되고 있다.

인력도 대거 보강됐다. 합수단 발족 이전엔 증권·금융범죄는 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 1~3부에서 나눠서 맡았다. 당시 금융 범죄를 담당하는 검찰 내 인력은 부장검사와 검사, 수사관 등을 포함해 42명에 불과했다. 지금은 남부지검 금융조세조사 1, 2부와 합수단 소속 부장검사 및 검사, 수사관이 53명이고 금융위원회 등 관련 기관에서 파견한 금융 전문가 25명까지 포함하면 약 80명에 이른다.

금융범죄 수사기간도 대폭 줄었다. 기존에는 한국거래소가 혐의를 포착해 금융당국을 거쳐 검찰이 기소하기까지 1년 가까이 걸렸지만 증권선물위원회 심의·의결 없이 남부지검이 수사를 시작하는 ‘패스트트랙 제도’가 정착하면서 지금은 한두 달 안에 해결되는 사건이 나올 정도다.

블록딜 등을 이용한 범죄 ‘스톱’

남부지검의 수사 영역도 다양해지고 있다. 증권 범죄가 빠르게 진화하는 만큼 코스닥시장의 주가 조작과 횡령 사건에 그치지 않고 블록딜(대량매매), 스팩(SPAC:기업인수목적회사) 등에서도 내부자거래를 잡아내고 있다.

지난달엔 처음으로 스팩의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시세차익을 얻은 콜마비앤에이치와 미래에셋증권 관계자 등 4명을 구속기소했다. 미래에셋스팩 주가는 합병 이전에 이미 50% 뛰었고, 합병 발표 이후 세 배 이상 급등했다.

합수단은 작년 7월 혐의를 포착하고 신속하게 압수수색했다. 증권사 직원과 펀드매니저뿐 아니라 콜마비앤에이치 직원도 20명가량 잡아냈다. 입증이 쉽지 않은 내부자거래 적발을 위해 250여명의 통화내역을 샅샅이 분석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주주가 보유한 지분을 블록딜하는 과정에서 뒷돈이 오고간 비리도 밝혀냈다. 주식 처분에 골머리를 앓던 대주주가 기관투자가에 지분을 파는 대가로 증권사 임원 등에 수억원의 수수료를 준 사건이다. 기관투자가는 매수 당일 주식을 전부 매도했고, 기관의 매수를 호재로 인식하고 주식을 산 개인투자자만 주가 급락으로 피해를 입었다. 합수단은 이 같은 방식으로 블록딜 관련 범죄를 저지른 일당 27명을 지난해 말 기소하고, 이 중 19명을 구속했다.

합수단 전문성 강화 시급

남부지검은 금융범죄 20%를 자체 적발했다. 거래소나 금융감독원이 적발한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사건을 인지한 사례가 많다는 얘기다. 블록딜 사건이나 채권시장 브로커 접대도 수사 과정에 추가로 적발한 것이다. 조재연 남부지검 2차장검사는 “지금까지 쌓은 역량을 바탕으로 기업의 자금조달, 대출, 보험 등 다양한 분야로 수사 범위를 넓힐 것”이라고 말했다.

증권사들은 채권 주식 PEF 헤지펀드 등 모든 분야에서 관행처럼 여기는 불공정거래가 없는지 점검하고 있다. 일부에선 남부지검의 수사 강도가 예상보다 강해 자본시장이 위축되고 있다는 불만이 터져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투자자 보호를 위해 증권범죄를 뿌리 뽑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 크다. 이를 위해선 남부지검 검사들의 전문성을 더 높여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한 법무법인 변호사는 “남부지검 증권·금융 범죄를 다루는 검사 인사가 너무 잦아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다”며 “금감원과 거래소 예금보험공사 파견 직원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지난 3년간 합수단장 임기는 평균 1년도 되지 않는다. 현 서봉규 단장이 네 번째 단장이다.

심은지/황정환 기자 summ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