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거래소의 '따로 그러나 같이' 이상
지주회사 체제에는 상당한 장점이 있다. 우선 모(母)회사가 자(子)회사들의 지분을 보유하되 자회사들이 각각 자신의 특성에 맞는 조직이나 영업 스타일을 선택할 수 있으므로 동일한 회사로 존재하는 데 따른 경직성을 탈피할 수 있다. 동시에 모회사가 제시하는 큰 방향을 자회사들이 공유하게 되면서 ‘따로 그러나 같이’라는 목표가 적절하게 달성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운영의 묘가 필요하기는 하지만 적절하게 장점을 살리면 좋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체제라는 점은 분명하다.

과거 한국거래소는 유가증권시장, 파생상품시장에 코스닥시장까지 통합해 대형 거래소가 되더니 공기업으로 지정된 바 있다. 독점 가능성으로 인해 이뤄진 조치이기는 하나 금융시장의 꽃이라 할 수 있는 거래소가 공기업으로 지정되면서 유연성과 확장성에 상당 부분 제한이 가해졌다. 다행히 최근 한국거래소는 공기업에서 해제되고 나서 변화에 잘 적응해 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거래소의 지주회사 체제 개편이라는 좋은 화두를 금융개혁 차원에서 제시한 바 있다. 유가증권시장, 코스닥시장, 파생상품시장이 가진 각각의 특성을 반영해 이들을 자회사로 개편하고 지주회사 체제 하에서 ‘따로 그러나 같이’의 이상을 추구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작년 9월 지주회사 전환 및 상장 등 거래소 구조개편을 핵심으로 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국회에 상정됐으나 본질과 무관한 본사 소재지 법안 명시 여부에 대한 논란 끝에 국회 통과가 무산됐다.

거래소 구조 개편은 우리 자본시장의 선진화에 필수적인 아젠다이다. 전 세계 대부분 선진 거래소가 이미 지주회사 체제로 개편됐고 상장법인화됐다. 그러나 지금 한국거래소는 주식회사이기는 하나 회원제식으로 운영되고 있는 비(非)상장법인이다. 글로벌 자본시장에서 경쟁하기 힘든 구조를 가지고 힘겨운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거래소가 지주회사 체제를 채택할 경우 사업별 특성화가 가능해지고 사업 영역 확대를 위한 과감한 투자도 가능해진다. 또 지주회사로서의 한국거래소가 큰 그림에 해당하는 장기적 전략을 수립하고 이를 자회사에 제시하면서 자회사 간 경쟁을 유도하는 경우 좋은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 책임경영이 촉진되면서 사업 영역 확대를 위한 과감한 투자를 통해 자본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더구나 최근 정보기술(IT)이 발달하고 자본 이동이 자유화되면서 각국 거래소들은 종합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복합 기업으로 거듭나고 있다.

세계의 거래소들은 대부분 이미 상장을 완료하고 활발한 인수합병(M&A)을 통해 사업 영역을 확장하면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고 있다. 2007년 뉴욕거래소(NYSE)와 유로넥스트(Euronext)의 합병을 시작으로 최근 영국거래소(LSE)와 독일거래소(DB)의 합병 추진에 이르기까지 거래소 간 합종연횡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이들 거래소는 금융복합기업으로 변모하고 있다. 평소에는 속도감이 떨어지는 일본조차도 2013년 도쿄거래소와 오사카거래소 합병을 통해 지주회사인 JPX그룹을 출범시키고 이를 상장함으로써 거래소 활성화를 위한 제반 환경을 정비한 바 있다. 이런 노력들이 다른 요인과 연결돼 결실을 맺으면서 일본 가계의 주식 및 펀드 보유 비중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그러나 한국거래소는 여전히 비상장기업으로서 주식 교환 등을 통한 합작 사업 추진도 힘들고 M&A를 통한 사업 확장은 물론 신규 사업 영역에 대한 투자금 확보도 어려운 상황이다. 발목을 묶어 놓고서 뛰라고 하는 형국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총선이 끝나고 19대 국회는 마지막 임시국회만을 남겨두고 있다. 19대 국회는 법안처리율 면에서 저(低)성과 국회라는 아쉬운 평가가 나오고 있다. 마지막 임시국회에서라도 미래를 논하면서 경제 문제에 신경을 쓰는 모습을 보일 때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임시국회에서 많은 금융개혁 아젠다를 담고 있는 자본시장법 통과가 꼭 이뤄지기를 기대해 본다.

윤창현 < 서울시립대 교수·공적자금관리위원회 민간위원장 hyun3344@daum.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