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째 대전 계족산 가꾸는 조웅래 맥키스 회장 "맨발로 느끼는 황톳길, 인생 굴곡과 똑같죠"
“여기 보세요. 같은 황톳길이라도 양달과 응달, 물이 뿌려진 곳과 아닌 곳이 다 다르죠? 인생사도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길이 싫다고 돌아갈 수는 없고, 그냥 가 보는 것이죠.”

지난 26일 대전 계족산 황톳길에서 만난 조웅래 맥키스컴퍼니 회장(57·사진)은 맨발로 산에 오르며 이같이 말했다. “사진 한번 같이 찍어 달라”며 인사하는 등산객들에게 그는 “이놈의 인기는 하여간 어쩔 수가 없다니까”라고 말하며 쾌활한 표정으로 사진을 찍었다.

소주 브랜드 ‘오투린’으로 잘 알려진 맥키스(옛 선양주조)는 대전과 충남지역을 기반으로 한 주류회사다. 2004년 조 회장이 인수하기 전만 해도 부도 직전이었지만, 이젠 대전과 충남지역 소주시장 점유율 70%를 차지하는 중견 회사로 살아났다.

하지만 조 회장의 명함엔 그의 캐리커처와 함께 ‘계족산황톳길 작업반장’이라고 적혀 있다. 술을 만드는 회사의 최고경영자(CEO)가 왜 산에 황토를 깔았는지 궁금했다. “계족산에서 마라톤을 자주 했어요. 어느 날 계족산에서 모임이 있었는데 그중 두 명이 하이힐을 신고 왔어요.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그 자리에서 저와 제 친구가 운동화를 벗어 주고 맨발로 걸었는데 그게 그렇게 좋았어요. 그 이후 계족산에 흙길을 깔겠다고 마음먹었죠.”

조 회장은 마음먹는 데만 그치지 않았다. 2006년부터 매년 약 7억원씩 들여 계족산 등산로에 황토를 깔았다. 전북 김제 및 익산 일대에서 황토를 공수하고, 흙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 1주일에 1~2회씩 물을 뿌렸다. 그렇게 만든 황톳길의 길이가 14.5㎞에 이른다. 2007년부턴 계족산에서 ‘뻔뻔(funfun)한 클래식’이란 이름으로 무료 성악 공연도 펼치고 있다. 계족산 황톳길은 2014년과 지난해 2년 연속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한국관광 100선’에 들며 전국 명소가 됐다. “처음엔 직원들 사이에서도 ‘술은 안 팔고 무슨 흙길을 까느냐’는 불만이 많았습니다. 다른 경쟁사들처럼 대학가에서 적극적으로 마케팅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유명 모델을 쓰는 것도 아니고요. 그래도 지역 사람들을 위해 뭔가 도움이 되는 걸 남길 수 있다면 술 몇 병 더 파는 것보다 낫겠다 싶었어요.”

그는 “술과 길, 음악 모두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매개체”라며 “길을 걷는 순간엔 언뜻 전혀 관계없어 보이지만, 걸어온 길을 돌이켜보면 모든 게 다 통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조 회장이 이렇게 말한 건 자신의 이력 때문이기도 하다. 경남 함안 출신인 그는 경북대 전자공학과 졸업 후 대기업에 다니다 1992년 2000만원으로 컬러링과 휴대폰 벨소리로 유명했던 ‘700-5425’를 창업했다. 그리고 2004년 선양주조를 사들이면서 아무 연고도 없던 대전에 정착했다.

“솔직히 제 인생에서 진정 신발을 벗고 자유를 찾았다 생각이 드는 건 2~3년 전부터입니다. 그전엔 그냥 어떤 길이든 걷고 또 걸었지만, 이제야 맨발이 주는 편안함을 깨닫게 되는 것 같아요. 미리 정해진 길만을 찾는 게 과연 옳은 걸까요. 제 경험상 자신이 진짜 걷게 되는 길은 ‘길 밖의 길’이었어요. 사람들이 이곳에서 그걸 찾을 수 있는 용기를 얻어 가길 바랍니다.”

대전=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