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인간에겐 있으나 AI엔 없는 것
“이제 승패는 판가름났으니, 한 번쯤은 봐준다는 건가.” 인공지능(AI) 알파고와의 바둑대결에서 인간이 내리 3연패를 당한 후 첫 승을 거두게 된 날, AI의 ‘얄팍한 승부 심리’를 의심하게 된 순간이 있었다. 뒤늦게 알게 된 건 알파고는 오로지 이기거나 질 수만 있을 뿐, 일부러 져 줄 순 없다는 사실이었다.

게임에서 ‘진다’는 것과 ‘져 준다’는 건 현격히 다른 의미다. 전자는 단순히 ‘패(敗)’지만, 후자는 “이길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진다”는 뜻이다. 의도적으로 져 주려면 상대에 대한 배려와 사랑이 있어야 한다. 필자의 어린 시절, 지금은 고인이 된 아버지가 아들과 힘겨루기를 하실 때마다 일부러 져 줬던 추억은 늘 ‘사랑’으로 기억된다.

의료계에도 AI를 도입한 첨단 기계와 로봇 시술이 각종 수술에 광범위하게 이용되고 있고,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인간이 만든 로봇과 AI 의료시스템이 탑재되면, 미래에 의사란 직업도 로봇에 자리를 내줘야 할 날이 도래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생명에 대한 존중과 사랑에서 시작되는 의료 영역만큼은 기계나 로봇으로 대체될 수 없을 것이라 확신한다. AI는 많은 지식의 알고리즘을 통해 수술과 처방, 처치에 관한 한 똑부러진 의료진 흉내를 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래도 환자의 아픔을 가슴으로 들어주며 마음으로 다가가 위로와 희망을 주는 정감어린 의사는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알파고는 강화학습을 통해 대국을 하면서 오로지 이기는 방법에만 주력했다. 인간은 승부를 넘어 바둑에 담긴 인생의 품격과 끝없는 도전, 패배를 통해서도 다시 일어서는 지혜까지 터득하며 살아간다.

병세가 깊어진 어르신들의 손을 꼭 잡아주는 것만으로도, “반드시 쾌유할 것”이란 따뜻한 말 한마디로도, “이미 병이 다 나은 것 같다”는 말씀을 들을 때마다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사랑의 의술을 펼쳐야 한다”는 가르침을 늘 되새기곤 한다. 적어도 의술의 시작은 환자를 보듬는 마음의 온기에서 나온다는 진리를 믿고 있기 때문이다.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중앙처리장치(CPU)에 저장해 놓은 AI는 이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또박또박 정확하게 나타낼 수는 있겠지만, 의사는 환자를 향한 사랑과 진심을 가지고 가슴으로 읊을 수 있다고 자부하기에.

윤호주 < 한양대 국제병원장 hjyoon@hanyang.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