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중앙銀 금융위기 이후 637차례 금리인하하고 1경4천조원 뿌려

헬리콥터에서 돈을 뿌려대는 보다 급진적인 통화정책이 전세계 중앙은행들이 다음으로 도입할 정책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각국 중앙은행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모두 637차례 이상 금리를 내리고 12조3천억 달러(약 1경4천345조원) 규모의 유동성을 풀었지만, 물가를 끌어올리는 데에는 실패했기 때문이다.

23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씨티그룹, HSBC, 코메르츠방크 등이 1969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밀턴 프리드먼이 제안했던 '헬리콥터 머니'를 최근 몇 주간 보고서에서 잇따라 언급했다고 전했다.

헬리콥터 머니는 프리드먼이 주창한 것으로 중앙은행이 직접 정부에 자금을 지원해 디플레이션을 막는 방법이다.

헬리콥터에서 돈을 뿌려댈 정도로 통화 공급량에 제한이 없다는 의미에서 이같이 불린다.

헬리콥터 머니는 최근 헤지펀드 브리지워터의 창업자 레이 달리오가 주장하면서 시장의 주목을 받았으며,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기자들의 질문에 "매우 흥미로운 개념"이라고 언급하면서도 ECB는 이를 검토해보지 않았다고 언급해 다시 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옥스퍼드 이코노믹스의 가브리엘 스테인 이코노미스트는 "헬리콥터 머니가 다음번에 시도될 해법이 될지는 확실히 모르겠다"면서도 "그러나 이 개념이 크게 주목을 받는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그는 해당 정책이 "어디서든 일정한 형태로 시행될 가능성이 이론적으로 매우 크다"라고 언급했다.

헬리콥터 머니는 정부가 단기 채권을 발행하면 돈을 찍어내는 중앙은행이 이를 직접 사들이는 것을 말한다.

기존의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의 경계를 무너뜨린다는 점에서 중앙은행의 독립성과 신뢰성을 해칠 수 있다.

하지만 정부는 중앙은행으로부터 채권 매각 대금을 받아 이를 세금 감면이나 재정지출에 활용하게 돼 채권 금리에 영향을 미치던 기존 정책과 달리 직접 민간에 자금을 지원해 지출과 투자를 촉진할 수 있다.

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이나 성장률 목표를 설정해 정부의 영구적인 자금 창구로서의 역할을 제한할 수 있지만, 이론적으로만 존재하는 개념으로 여태껏 시행된 적은 없다.

벤 버냉키 전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2002년 연설에서 하늘에서 돈을 뿌리는 것이 "소비와 물가에 확실히 효과적"이라고 언급하면서 버냉키 의장에게 '헬리콥터 벤'이라는 별명이 붙은 바 있지만, 버냉키조차도 해당 정책을 시행한 적은 없다.

헬리콥터 머니 정책을 비판하는 이들은 이 정책이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이 겪었던 것과 같은 초인플레이션을 야기하고, 대규모 정부 부채를 양산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또 중앙은행의 독립성과 신뢰성이 타격을 입고 이러한 정책에도 소비가 늘지 않으면 결국 정책 자체가 역풍을 맞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옌스 바이트만 독일 분데스방크 중앙은행 총재는 "헬리콥터 머니는 중앙은행의 대차대조표에 거대한 구멍을 뚫는 것"이라며 결국 정부와 납세자들은 빚더미에 안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블랙록의 이웬 카메론-와트 최고투자전략가는 "헬리콥터 머니 정책이 당장 시행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먼저 상당한 경기침체와 물가상승에 대한 기대의 하락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캐피털이코노믹스의 조나단 로인스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몇 년간 얻는 교훈이라면 이례적인 경제 환경이 오랫동안 지속하면 이전에는 역사 교과서에나 혹은 이론에서나 제한됐던 상상할 수 없던 정책들이 현실이 될 수 있다는 점"이라며 각국 중앙은행들이 한때 거부됐던 개념들을 기꺼이 다시 보기 시작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고 조언했다.

(서울연합뉴스) 윤영숙 기자 ysyo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