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봉구 기자 ] 테러방지법(국민보호와 공공안전을 위한 테러방지법) 국회 본회의 표결을 막기 위한 필리버스터(filibuster: 무제한토론)가 25일 사흘째를 맞았다. 23일 저녁 시작돼 야당 의원이 7명째 바통을 이어받았다. 장장 10시간18분을 연설한 은수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내 필리버스터 최장 발언기록을 경신했다.

언제까지 계속될까. 원칙적으로는 2월 임시국회 회기가 끝나는 다음달 11일까지 이어갈 수 있다. 더민주가 일단 이같은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정의당, 국민의당 의원들도 힘을 보탤 예정이다.
10시간18분 동안 연설해 국내 필리버스터 최장 발언기록을 경신한 은수미 의원. / 출처= 더민주 트위터
10시간18분 동안 연설해 국내 필리버스터 최장 발언기록을 경신한 은수미 의원. / 출처= 더민주 트위터
◆ 다수당 날치기 vs 소수당 뻗치기 여론향배는

관점은 엇갈린다. 필리버스터는 다수당의 ‘날치기’를 막는 합법적 수단이란 의의가 있다. 반면 소수당의 ‘뻗치기’를 조장한다는 부정적 시각도 만만찮다.

이런 점에서 전문가들은 장시간 필리버스터가 야당에 ‘양날의 검’이 될 것으로 봤다. 전자와 후자 가운데 어느 쪽에 여론의 방점이 찍힐지가 관건이란 얘기다.

야당 입장에서 긍정적 측면은 이슈화다. 국회선진화법(현행 국회법) 시행 후 처음인 필리버스터에 이목이 쏠리면서 대중이 테러방지법 반대 이유를 관심 갖고 들여다보고 있다. 그러나 고의적 의사진행 지연행위라는 속성상 자칫 국회 마비의 책임을 짊어지는 역풍도 맞을 수 있다.

홍완식 건국대 교수는 “필리버스터는 합법적 제도다. 다만 4·13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정치적으로는 불리할 수 있다”며 “필리버스터가 무한정 계속될 경우 야당 지지층 결집효과는 있을 것이나 부동층의 피로증을 불러올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필리버스터의 도입은 무제한 의사진행 방해보다 ‘몸싸움 방지법’의 맥락이 크다고 짚었다. 그는 “몸싸움 방지법의 취지는 어느정도 달성했다”고 평가하면서도 “여당은 머릿수에만, 야당은 필리버스터에만 의존하지 말고 정당간 합의를 이끌어내는 제도적 장치로 활용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상신 숭실대 교수도 논문 ‘국회선진화법과 입법교착’(미래정치연구, 2015)에서 필리버스터를 “여당에 대한 위협인 동시에 야당에 대한 압박으로 작용할 수 있는 장치”로 규정했다. 입법교착의 책임을 야당이 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 여당과의 합의나 여론 설득에 실패할 경우 결국 다수결 처리된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필리버스터로 국회 본회의 표결이 지연되고 있는 테러방지법의 쟁점과 여야 주장. / 한경 DB
필리버스터로 국회 본회의 표결이 지연되고 있는 테러방지법의 쟁점과 여야 주장. / 한경 DB
◆ 아낄수록 효과 올라가는 '필리버스터의 역설'

이른바 ‘필리버스터의 역설’이다. 최후 수단인 만큼 아낄수록 정치적 합의를 시도할 운신의 폭이 넓다는 의미다. 이 교수는 “필리버스터는 실제로 실행됐을 때보다 그 실행가능성으로 인해 정당간 합의를 강제하는 효과가 더 큰 제도”라고 역설했다.

외부 요인을 배제하고 법안 처리 관점에서만 보면 시간은 여당 편이다. “여당은 기다리기만 해도 표결에 부쳐 처리할 수 있으므로 야당에게도 필리버스터는 만능이 아니다”라는 게 이 교수의 설명이다.

제도 자체에 대한 회의적 평가도 있다. 회기 계속의 원칙을 채택한 우리 국회 상황을 감안하면 필리버스터가 전체 의사일정을 마비시킬 위험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김준석 동국대 교수는 미국 상원 사례를 다룬 ‘필리버스터의 제도화 과정과 논란’(오토피아, 2010)에서 “근래 미국에선 필리버스터가 정파간 대치 국면의 주범으로 지목돼왔다. 필리버스터는 결코 다수파와 소수파의 갈등을 조정하는 제도도, 선진의회의 산물도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필리버스터가 균형 있는 갈등조정 메커니즘 구실을 하려면 당론투표 같은 풍토부터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집단적 양당 대립구도와 필리버스터 제도는 맞지 않는 짝이란 설명이다.

임성호 국회입법조사처장은 경희대 교수 시절 발표한 ‘국회운영과정상 수의 논리와 선호도의 논리’(의정연구, 2010)에서 “정당 대결이 된 필리버스터 중 상당수가 타협안을 낼 수 있었던 것은 정당 경계를 넘나들며 교차 투표한 중간지대 의원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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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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