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사고다발 그리고 차집관거
일상의 업무를 벗어나 쉰다는 뜻의 휴(休)는 사람(人)이 나무(木) 옆으로 다가서는 것이니까, 실내에만 머무는 것은 진정한 휴식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도시인들이 휴식을 위해 자연을 찾아 밖으로 나서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 생각한다. 특히 최근에는 많은 사람이 강변에 만들어진 깔끔한 산책로와 자전거 도로를 찾고 있는데, 그곳에서 자연과 교감하며 건강도 다지는 것은 참으로 보기 좋은 광경이다. 우리는 어느 선진국과 비교해도 부럽지 않은 도시 환경을 갖추고 있다.

자주 찾는 친숙한 강변길이라도 갑자기 눈에 띄는 생경한 풍경이나 정황도 있게 마련인데, 바로 지난 기회에 관심을 갖게 된 일은 우선 ‘사고다발지역’이라 쓰인 표지판이었다. ‘사고 많은 곳’이면 될 것을 다발(多發)이란 한자어를 쓴 것은 아쉬운 일이다. 한자에 익숙하지 않은 요즘 젊은이들은 아마도 한 다발 두 다발 혹은 한 묶음 두 묶음으로 헤아려야 할 만큼 사고가 많은 곳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다. 그렇게라도 뜻이 통하면 다행이다.

그런데 학창시절 한자교육을 조금은 받았다는 필자에게도 ‘차집관거주의’ 표지판은 낯설었다. 토목공학에서 쓰는 전문용어니까 몰라도 된다면 할 말은 없지만 한글로 쓰여 있는 ‘차집관거’는 마치 처음 듣는 라틴어만큼이나 아무런 의미 없는 용어였다. 호랑이를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사람이 호랑이를 주의할 수 있을까? 돌아와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막을 차(遮), 모을 집(集), 대롱 관(管) 그리고 도랑 거(渠)로, 아마도 빗물을 따로 모아 보내는 인공물길을 뜻하는 모양이다. 이것도 차라리 ‘빗물 도랑’으로 썼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우리 사회가 한글로 된 용어를 더 많이 만들고 이를 이용해야 한다는 주장에 적극 공감한다. 그러나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적어도 ‘사고다발’을 다발(多發)로 헤아릴 만큼은 한자교육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한자는 이미 오래 된 우리의 문화와 전통이며 따라서 우리 말의 중요한 요소다. 그런데 이를 도외시하면서 새로운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조어(造語)능력이 현격히 떨어지는 점은 우리의 미래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다.

이런 이유로 특히 과학기술 용어들은 거의 모두를 서양 원어 그대로 받아서 쓰고 있는데, 이래서는 뒤따르고 있는 이 분야의 현 상황을 벗어날 수 없다. 즉, 우리가 스스로 용어를 짓고 이를 다른 나라에서도 수용할 때 우리는 진정한 선도자임을 자부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언어에서의 한자는 서양에서의 라틴어와 비슷한 역할과 기능을 가진 존재다. 잘 아는 바와 같이 물의 분자식은 로 수소 원자 두 개와 산소 원자 하나가 결합한 것인데, 여기서 수소라는 명칭은 당연히 물 수(水)와 바탕 소(素)라는 한자를 조합한 것이다. 이는 영어에서도 마찬가지여서 hydrogen에서 hydro는 물을 의미하고 gen은 원천을 뜻하는 라틴어의 결합이다. 이처럼 과학용어들은 일반적으로 뜻을 지닌 단어들의 복합체인데, 이는 의미가 없는 소리 글만으로는 새로운 현상이나 개념을 나타내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자를 이용하면 수소(水素) 외에도 수질(水質), 수압(水壓), 수력(水力), 수차(水車) 등 많은 용어를 쉽게 만들 수 있다.

hydrophobia는 hydro와 공포증을 의미하는 phobia의 결합, 즉 공수병(恐水病)을 의미한다. ‘물무섬병’으로 쓰자는 주장에도 동의하지만, 그러나 공수병도 우리 말이기에 그 사용을 꺼릴 이유가 없다. 이를 위해서는 적어도 공수(恐水)를 공수(攻守), 공수(空手), 혹은 공수(空輸) 등과 구별할 수 있는 기본적인 한자 지식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2018년부터 초등학교 교과서에 몇 백자 정도의 한자를 병기(倂記)하겠다는 정부의 결정은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Korea의 번역을 대한민국으로 알고 있는 신세대에게 우리의 조국은 ‘大韓民國’임을 가르쳐야 한다.

김도연 <포스텍 총장 dohyeonkim@postech.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