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봉책에 기댄 국책은행 증자] 산업은행-수출입은행, 부실기업 지원 비용 '돌려막기'
산업은행이 한국수출입은행에 한국도로공사 주식 5000억원어치를 현물 출자하기로 했다. 지난해 말 정부로부터 LH(한국토지주택공사) 주식 1조원어치를 출자받았던 수은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이 또 낮아져 대출 여력이 떨어지자 이번엔 산은이 ‘급전’ 지원에 나선 것이다.

그러나 산은도 지난해 약 1조9000억원의 순손실을 낸 터라 국책은행 부실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국책은행끼리의 부실기업 지원비용 돌려막기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회사채 시장 경색 등으로 부실기업들의 국책은행 의존도가 갈수록 높아지면서 국책은행도 덩달아 흔들리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수은은 최근 5000억원 규모의 한국도로공사 주식을 현물 출자해 줄 것을 산은에 공식 요청했고, 산은은 조만간 출자하기로 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지난해 산은 자회사인 대우조선해양이 5조원 규모의 손실을 내면서 수은이 1조6000억원을 지원해 준 것에 대한 반대급부”라며 “산은은 보유 자산인 한국도로공사 주식을 수은 지분으로 교체하는 것이어서 자본 구조는 그대로”라고 설명했다. 다만 출자 후 산은이 보유한 수은 지분은 13%에서 18.6%로 올라간다.

수은이 산은에 출자를 요청한 것은 건전성 지표인 자기자본비율(위험자산 대비 자본 비중)이 떨어져서다. 금융당국은 건전성 관리 차원에서 은행의 자기자본비율을 10% 이상 유지하도록 하고 있다. 수은은 지난해 말 정부로부터 LH 주식 1조원어치를 출자받아 자본비율을 10.11%까지 높였지만, 올 들어 대출이 늘고 환율이 상승하면서 다시 9.5% 수준으로 떨어졌다. 산은의 자기자본비율은 14% 안팎을 유지하고 있어 상대적으로 곳간이 넉넉한 만큼 수은을 지원할 여력이 있다는 게 이번 거래의 배경이다.

겉으로는 잘 짜인 거래라는 평가가 많다. 산은은 자산의 내용물만 바꿨고 수은은 증자에 성공해 자본을 확충했으니 대출을 더 늘릴 수 있다. 수출기업 지원을 위한 ‘실탄’을 확보했다는 얘기다. 정부로서도 세금 한 푼 안 들이고도 한숨 돌리게 됐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미봉책이라고 꼬집고 있다. 산은도 지난해 1조9000억원에 달하는 대규모 손실을 냈다. 포스코플랜텍, 동아원 등의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과 대우조선해양, STX조선해양 등의 부실에 따른 대손충당금 비용이 크게 늘어난 탓이다. 순이익을 늘리거나 증자를 통해 자본을 확충해야 자기자본비율이 떨어지지 않는 점을 고려하면 산은도 정부로부터 추가 출자를 받아야 할 가능성이 있다.

산은과 수은의 지난해 말 기준 3개월 이상 원리금이 연체된 고정이하여신 규모는 3조원과 2조7000억원에 달한다. 금융권 관계자는 “근본 대책 없이 공기업 주식으로 국책은행 자본을 확충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결국 세금이 들어가야 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민간은행이 대출을 기피하면서 부실기업에 대한 지원 부담이 국책은행으로 쏠리고 있는 만큼 국책은행 부담은 갈수록 더 커질 것이라는 우려도 많다.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이 전체 기업 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이미 30%를 훌쩍 넘어섰다. 기업의 주요 자금조달 통로인 주식과 회사채 시장이 경색돼 있는 것도 국책은행 쏠림 현상을 부채질하고 있다. 좋은 기술을 가진 기업들이 상장을 통해 자금을 조달한다는 공식은 깨진 지 오래다.

회사채 시장의 양극화는 해결될 조짐이 없어 보인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자산 20조원이 넘는 현대중공업도 회사채 발행이 쉽지 않은 게 지금의 현실”이라며 “조선, 해운, 건설, 석유화학, 기계 등 경기민감업종이라고 하면 기관이건 개인이건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는다”고 답답해했다.

산은이 지난해 2조원에 육박하는 대규모 손실을 내면서 전체 은행권 순이익도 2014년 대비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금융감독원이 이날 발표한 ‘2015 국내 은행 영업실적’에 따르면 17개 은행의 지난해 순이익은 3조5000억원으로 2014년(6조원) 대비 2조5000억원(42.6%) 감소했다.

김일규/박동휘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