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불퇴전의 의지
정부의 개성공단 가동 중단 결정에 대해 말들이 많다. “전쟁을 하자는 거냐”며 거칠게 비판하는 야당 인사도 있고, 정부 조치를 환영하면서도 “북한에 으름장을 놓았던 특단의 조치가 겨우 이것이냐”며 그 효과를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미 오래전에 취했어야 할 당연한 조치고, 그 효과도 상당할 것이다.

첫째,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6일 국회 연설에서도 밝혔듯이 개성공단 가동 중단은 핵무기 및 장거리 미사일 개발에 이용될 돈줄을 일부나마 차단하는 효과가 있다. 연구자들은 북한이 2000년 이후 핵무기 및 장거리 미사일 개발에 37억달러를 사용했으며, 이 가운데 6억달러는 개성공단에서 지급된 임금으로 충당한 것으로 추산한다. 현재 개성공단에서 북한이 벌어들이는 외화는 1년에 1억달러 정도인데, 이것이 없다고 북한의 핵무기 및 미사일 프로그램이 당장 중단되는 타격을 줄 수는 없겠지만 진행을 늦출 수는 있을 것이다.

둘째, 개성공단은 대북(對北)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고 국제적 제재를 공조하는 데 커다란 장애물이었는데 이것을 제거했다. 이른바 ‘햇볕정책’으로 알려진 것처럼 포용이 정책 기조였던 시기에 개성공단은 대북 정책과 조응하는 정책 수단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햇볕정책이 파산하고 북한의 도발에 대해 강경한 대응이 필요하게 됐을 때 개성공단은 늘 우리의 강력한 대응 의지를 의심케 하는 요소였다. 뿐만 아니라 북한의 도발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제재도 미처 다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북한에 대한 국제 사회의 강력한 제재를 요구하고 나서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 실제로 워싱턴 정가의 일각에서는 오래전부터 개성공단 가동 중단을 요구하고 있었다.

셋째, 개성공단 가동 중단은 북한 사회의 분열과 동요를 가져오는 단초가 될 수도 있다. 북한 정권의 개성공단 폐쇄로 북한 기준으로는 매우 좋은 일자리를 잃게 된 개성공단의 노동자가 5만여명이고, 그 가족들을 더하면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사람이 20여만명에 이른다. 이들은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 개발이 근본 원인이었다는 사실을 암암리에 북한 사회에 퍼뜨릴 것이다.

오랜 기간 남북관계는 일종의 ‘치킨게임’이었다. 두 대의 자동차가 마주보고 돌진하는 이 게임에서는 충돌을 피해 먼저 운전대를 꺾는 사람이 치킨(겁쟁이)이 된다. 치킨게임에서 이기는 길은 출발에 앞서 운전대를 뽑아 버린다든지 해서 이쪽에서는 중도에 절대 피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상대방에게 각인시키는 것이다. 적어도 박근혜 정부 이전까지 한국은 이 점에서 실패했다. 오히려 ‘벼랑 끝 전술’로 불리는 북한의 운전대 뽑기에 한국은 거의 언제나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 왔다. 포용이라는 미명 아래 미리 게임 자체를 포기한 적도 있었고, 거듭된 군사적 도발에 대해서도 제2의 연평해전과 같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화해 협력의 분위기를 손상시킬 수 없다든지, 파국만은 피해야 한다든지 하는 명분 아래 미온적인 대응에 그친 사례가 많았다. 당연히 개성공단은 한국의 의지를 의심케 하는 존재였다. 북한의 도발이 그동안 거듭된 것도 따지고 보면 모두 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남북한 치킨게임에서 한국은 개성공단 운영 중단을 통해 자신의 운전대를 뽑아 버렸음을 분명히 했다. “전쟁을 하자는 거냐”고 질문하는 이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계속 달려들면 어찌 하느냐고 묻는 것일 게다. 하지만 지나치게 파국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불퇴전(不退轉)의 의지를 보인 이상 이제 북한이 망설일 차례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둘러싼 국제 공조의 벽도 더욱 높아질 것이다. 정부는 한·미·일의 안보협력을 강화하고 이를 지렛대 삼아 중국과 러시아의 좀 더 적극적인 협조도 끌어낼 것이다.

박 대통령이 국회 연설에서 밝혔듯이 개성공단 운영 중단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정부는 북한 핵무기에 대한 방어력을 증대시키는 한편 그 성격상 드러내 놓고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북한의 비(非)대칭 전력을 상쇄할 우리의 비대칭 전략이나 수단을 확충하는 방안도 분명히 모색하고 있을 것이다.

이영조 <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 정치경제학 yjlee@kh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