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공포 이길 수 있는 역발상 투자
“곤경에 빠지는 건 뭔가를 몰라서가 아니다. 확실히 안다는 착각 때문이다.”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 대출) 부실 사태를 배경으로 한 영화 ‘빅쇼트(Big Short)’는 미국의 대문호 마크 트웨인의 말로 시작한다. 빅쇼트는 가격이 하락하는 쪽에 베팅하는 것을 뜻하는 주식시장 용어다. 급락이 예상되는 자산을 공매도해 차익을 얻는 투자 기법이다.

아카데미 작품상 등 5개 부문 수상 후보에 오른 이 영화는 2008년 미국발(發) 글로벌 금융위기를 예견한 네 명의 금융인이 ‘월스트리트의 바보들’을 상대로 거액을 벌어들이는 스토리를 담았다. 주인공들은 당시 가장 튼튼하다고 여겼던 미국 부동산시장의 하락에 돈을 걸었다. 기르는 개의 이름으로 주택담보 대출을 받거나, 옷을 벗고 춤을 추는 스트리퍼가 빚을 내 고급 주택 다섯 채를 사들일 정도로 은행 시스템이 허술하다는 점을 간파한 것이다. 영화는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착각’이었다는 사실과 확신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시장 상황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돈 풀기’ 후유증 앓는 증시

현실의 시장은 빅쇼트 속 시장과 정반대다. 요즘 시장엔 온통 ‘위기’ 얘기뿐이다. 각국 중앙은행의 돈 풀기(양적 완화) 경쟁으로 촉발된 레버리지(차입금을 지렛대 삼아 투자 수익률을 높이는 것) 효과 덕분에 급등했던 글로벌 증시는 혹독한 후유증을 앓고 있다. 마이너스 금리가 불러온 증시 폭락 등 금융시장의 대혼란, 저(低)유가가 야기한 예기치 못한 기업 실적 악화 등 ‘역설적인 사실들’에 직면했다. 일본의 마이너스 기준금리가 유발한 엔화 강세와 도쿄증시 급락은 대다수 전문가들의 분석을 한순간에 ‘착각’으로 바꿔 놓았다. 유럽 은행의 위기설까지 더해져 글로벌 금융위기 재발 가능성마저 고개를 들고 있다.

저유가와 중국 경기 둔화, 엔고(高), 유럽 은행의 위기 등은 우리가 컨트롤할 수 없는 외부 변수다. 가뜩이나 해외 변수에 취약한 체질을 가진 우리 시장에 공포가 전염병처럼 번지는 이유다. 하지만 공포를 이겨내는 것이 진정한 투자다. 투자의 귀재로 통하는 워런 버핏은 “사람들이 공포에 빠져 있을 때가 주식을 싸게 살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비관론 극에 달할 때가 기회”

최근 만난 한 증권사 임원은 “지금이야말로 주가연계증권(ELS)에 투자할 절호의 기회다”는 말을 했다. 지금 들어가면 손실을 볼 확률이 낮다는 것이다. ELS는 보통 발행 후 3년째인 만기 때까지 기초자산 가격이 일정 수준(판매 시점 대비 40~60%) 이하로만 떨어지지 않으면 ‘은행금리+α’를 받을 수 있는 상품이다. 홍콩 항셍중국기업지수(HSCEI·H지수)가 지난 12일 7,505.37까지 떨어지면서 기존 ELS 물량이 대거 녹인(knock-in·원금 손실) 구간에 진입했지만 신규 투자자 입장에서는 수익을 낼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됐다는 설명이다.

대부분의 개인투자자들은 주가가 급락하면 잔뜩 겁을 먹고 움츠렸다가 주가가 한참 오른 뒤에야 막차를 탄다. 우량주를 싸게 살 수 있는 기회였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다. 장기투자할 만한 우량 기업 주식을 사서 진득하게 묻어 두면 시장의 단기 변동이나 돌발 악재 따위에 놀랄 일은 없다. “비관주의가 극에 달했을 때가 가장 좋은 매수 타이밍”이라는 존 템플턴(세계적인 자산운용사 프랭클린템플턴 창업자)의 말을 되새겨 볼 만한 시점이다.

이건호 증권부 차장 leek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