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극단과 프랑스 오를레앙국립연극센터가 공동제작한 연극 ‘빛의 제국’에서 주연을 맡은 배우 문소리(왼쪽부터)와 연출가 아르튀르 노지시엘, 배우 지현준. 국립극단 제공
국립극단과 프랑스 오를레앙국립연극센터가 공동제작한 연극 ‘빛의 제국’에서 주연을 맡은 배우 문소리(왼쪽부터)와 연출가 아르튀르 노지시엘, 배우 지현준. 국립극단 제공
2013년 10월 아르튀르 노지시엘 프랑스 오를레앙국립연극센터 예술감독은 한국 국립극단으로부터 한 통의 메일을 받았다. 프랑스에서 번역 출간된 한국 소설을 함께 연극으로 제작해 한국·프랑스 수교 130주년인 2016년 무대에 올려보자는 제안이었다. 김영하의 소설 빛의 제국을 읽은 그는 ‘이 작품이다’고 생각했다. 분단 현실이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문학적으로 표현한 데 끌려서였다. 프랑스에서 한국 영화 ‘오아시스’ ‘박하사탕’ 등을 봤던 그는 배우 문소리와 함께 작업하고 싶다고 제안했다.

국립극단과 오를레앙국립연극센터가 공동 제작한 연극 ‘빛의 제국’이 다음달 4~27일 서울 명동예술극장 무대에 오른다. 내부자의 시각으로만 바라봤던 분단 현실을 ‘이방인의 시선’으로 보자는 뜻에서 프랑스 극작가 발레리 므레장이 원작 소설을 각색하고, 노지시엘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끈 떨어진 간첩’ 김기영 역은 지현준, 인생의 한가운데서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기영의 부인 장마리 역은 문소리가 연기한다.

노지시엘 감독은 “분단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어떻게 개인의 삶에 영향을 끼치고, 세대를 건너 전달되는지 표현하고 싶다”며 “‘죽음’과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한국뿐 아니라 세계 어디서나 공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극은 20년간 서울에서 ‘잊혀진 존재’로 살아온 남파 간첩 김기영이 어느날 아침 “모든 걸 버리고 24시간 내에 귀환하라”는 명령을 받으면서 시작된다. 24시간 동안 서울에서의 인생을 정리하는 남성과, 이전과 같은 듯 다른 하루를 보내는 여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노지시엘 감독은 방대한 원작을 두 시간으로 압축해 냈다. 스파이의 하루를 따라간다는 큰 줄거리는 유지하되 과감한 각색을 시도했다. 무대는 두 개의 스크린이 걸려있는 녹음실이다. 스크린에선 각 등장인물의 일상이 담긴 영상이 나오고, 배우 각각의 개인사를 연극 중간에 삽입해 각자의 기억을 이야기한다. 노지시엘 감독은 “극중 주인공들은 진실과 거짓, 꿈과 무의식, 현실과 허구의 희미한 경계선을 탐험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소리는 2010년 ‘광부화가들’ 이후 6년 만에 연극 무대에 선다. 그는 “무대에 돌아오면 치료를 받는 느낌”이라며 “예전에 이런 시간을 더 많이 가졌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지현준은 “화면에서만 보던 누나(문소리)가 전도 부쳐 오고, 김치도 가져와 다 함께 밥 먹으며 연습에 집중하고 있다”며 “같이 밥을 먹는다는 것은 ‘식구(食口)’라는 의미인데, 이런 경험이 이번 연극에 어떤 힘을 발휘할지 기대된다”고 말했다. 이번 연극은 오는 5월17~21일 오를레앙국립연극센터에서도 공연한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