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표류기] '하는건지 마는건지' 청년수당 신청해봤습니다
[편집자 주] 통계청이 지난 13일 발표한 '6월 고용동향'을 보면 청년층(15∼29세) 실업자는 1년 새 1만8000명 늘었습니다. 실업률은 0.1%p 올라 10.3%로 뛰었습니다. 1999년 6월(11.3%) 이후 6월 기준으로 가장 높았습니다.

이른바 17년만의 최악 실업률. 청년 경제 사정은 갈수록 나빠지고 있습니다. 양질의 일자리도 줄어들고 있죠. 아르바이트 최저 시급은 6030원. 한달 내내 몸 굴려 일해도 등록금은 물론 서울 생활비 해결도 쉽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취업난을 헤쳐나갈 경제적 여건과 시간이 부족한 현실에 청년의 속은 타들어 갑니다.

서울시가 3000명 청년에게 한달 50만원씩 6개월간 지급하는 '청년 활동수당(이하 청년수당)' 정책을 도입하려는 배경입니다. 등록금, 거주, 부채 등 청년의 경제 문제를 덜려는 '2020 서울시 청년정책' 종합대책의 일환입니다. 생계 걱정을 덜고, 미래를 준비하는 숨통을 틔울 묘책이라고 서울시는 말합니다. "복지 포퓰리즘" 반대 여론도 만만찮습니다. 정부는 위법성이 있다며 사업 철회를 권고했죠.

정작 삶이 팍팍한 서울 젊은이들은 내심 청년수당에 관심이 많습니다. 뉴스래빗은 이에 만 28세 청년과 함께 실제 청년수당 지원 과정 전체를 체험해봤습니다. 지원 과정 상의 많은 문제점을 함께 들여다 볼 수 있었습니다. 시행 여부가 여전히 안개 속인 '청년수당' 신청기 속으로 함께 가보시죠 !.!
뉴스래빗과 함께 지난 5월부터 청년수당 신청 과정을 함께 준비한 배우지망생 전종구씨(가명).
뉴스래빗과 함께 지난 5월부터 청년수당 신청 과정을 함께 준비한 배우지망생 전종구씨(가명).
지난 5월, 뉴스래빗은 청년수당에 지원의사를 밝힌 전종구 씨(28·남·가명)를 어렵게 만났습니다. 전 씨는 배우 지망생입니다. 3년 전 꿈을 쫓아 무작정 상경했습니다.

서울살이는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매일 아침 9시 자취방을 나섭니다. 연기 연습시간을 쪼개 아침 저녁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걸레를 빨고, 탁자를 닦다 보면 다행히 시간은 금세 갔습니다. 여유가 날 때면 재산목록 1호인 대본을 꺼내 연습에 몰두했습니다.

힘들지 않냐는 질문에 "다 이렇게 사는 거 아닌가요?"하며 멋쩍은 웃음을 지었습니다.

"공연장 청소부터 시작해 단역을 얻기까지 1년이 걸렸어요. 처음에는 생계를 위해서 아르바이트는 조금만 하고, 제대로 일자리 잡으면 일을 그만둬야지 생각했습니다. 점점 아르바이트 하는 시간은 늘어났고, 지나고 보니 돈 모아 뭘 하려 했는지 잊게 되더라고요."

지친 몸으로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돌아오던 어느 날. 꿈과 미래는 혹여 사치이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하루 수십번 고향에 내려가고 싶었고 일상은 고됐지만, 전 씨는 포기하기엔 너무 멀리 왔다고 했습니다.

지난 5월 '청년수당' 신청을 처음 결심하게 된 계기입니다. 하지만 뉴스래빗과 함께 청년수당 지원을 준비하던 5월 말, 서울시의 청년수당 세부 요건 발표는 결국 연기됩니다. 1차 도전은 기약없이 미뤄졌습니다.
[청년 표류기] '하는건지 마는건지' 청년수당 신청해봤습니다
그러던 이달 초 서울시는 다시 청년수당 신청 공고를 냈습니다. 뉴스래빗은 다시 전 씨를 설득했고, 2차 신청 작업에 돌입했습니다. 지난 15일이었던 수당 신청 마감일 1주일 전부터 전 씨와 수차례 만났습니다.

그는 먼저 본인이 작성한 청년수당 지원서를 보여줬습니다. 그리고 반문했습니다.

"근데 제가 되겠어요? 신청서를 보면 대상자 선정이 투명하게 이뤄질지 의문이 드네요. 지원 기준도 애매합니다. 활동 계획서를 제출해서 선발한다고 하는데, 구직 개념 활동이 아닌 사회 참여활동계획을 요구하는게 좀 이상하네요."
실제 서울시 홈페이지에서 청년수당 신청시 입력해야하는 온라인 양식.
실제 서울시 홈페이지에서 청년수당 신청시 입력해야하는 온라인 양식.
그래도 서울시가 정한 요건대로 차례차례 준비를 하기로 했습니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야하는 법이니까요. 하지만 청년수당 지원 과정은 다소 까다로웠습니다. 마치 당장 모든 청년이 50만원씩 '공돈'을 받을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지원 자격을 충족하는 청년 자체가 많지 않습니다.

△1년 이상 서울에 거주한 만 19~29세 청년(재학생은 제외), △건강보험상 가구소득(중위소득 60% 이하, 1인 가구 월 94만 원 이하), △미취업기간, △주 30시간 미만 근로자도 신청대상, △부양가족 수(배우자, 자녀) 등을 조건을 만족해야 합니다. 요건이 비슷할 경우 저소득층과 장기 미취업자를 우선 선발하죠. 이를 증명할 구비서류와 함께 지원 동기와 활동 목표, 희망 프로그램 등이 포함된 활동계획서를 제출해야 합니다.

필요 서류는 △주민등록등본(1년이상 서울 거주), △건강보험납부확인서(피부양자일 경우 가구소득 증명 건강보험 자격확인서), △고용보험 피보험자격이력 내역서(미취업기간), △최종학력 졸업증명서(졸업예정증명서) 등 4~5통 입니다.

전 씨와 이들 구비 서류를 준비하는데만 일주일이 걸렸습니다. 주민등록등본, 졸업증명서 및 고용보험자격이력내역서(고용보험 납부기록이 없는 신청자의 미취업기간은 최종학력졸업 시부터 현재까지) 등은 정부민원포털 민원24, 고용보험 홈페이지를 통해 발급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건강보험납부확인서는 고향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야했습니다. 본인 건강보험 납부 금액이 없는 전 씨의 경우 부양자(부모님)의 최근 건강보험납부확인서를 받아 제출해야 합니다.

절차상 전 씨가 대신 서류를 뗄 수 없었습니다. 결국 고향 부모님이 직접 공단을 방문해 서류를 받아와야 했습니다. 배우의 꿈을 쫓는 아들의 서울 상경을 말리던 부모님이셨습니다. 전 씨는 걱정하실까봐 청년 수당 신청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전 씨는 고민했습니다. 결국 "취업을 위해 필요하다"는 거짓말을 하고 서류를 받았습니다.

지원 동기 및 활동 계획서가 과연 선발 기준으로 적절한지 아리송했습니다. 지난 5월부터 전 씨는 보컬레슨, 무용학원 등록 및 연습실 대여 등 취업을 위한 수당 사용계획을 꼼꼼히 세웠습니다. 쓰임새는 월별로까지 구별했습니다. A4용지 1장에 달했습니다.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적어야 선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서울시 홈페이지 월별 활동계획은 단 300자 이하로만 입력할 수 있습니다. 300자면 문장 서너 줄 분량입니다. 전 씨는 결국 300자 제한에 막혀 6개월 계획의 반의 반도 제출하지 못했습니다. 서울시가 애초 활동 계획 자체를 면밀히 검토할 의지가 없는 듯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청년수당 대상자에는 대학교 또는 대학원 재학생도 배제됐습니다. 기초생활수급자가 선정되면 청년수당이 소득으로 잡혀 수급자에서 탈락될 수 있습니다.

청년수당 모니터링 방안은 제대로 마련됐을까요. 서울시가 청년수당 사용처를 제대로 확인하는 절차입니다. 앞서 5월에는 지출 범위를 △진로탐색비용 : 인·적성검사비나 취업특강 등, △진로설계비용 : 전문 컨설팅비, 전문교육비 등, △진로실행비용 : 학원수강비, 스터디 장소 대여비, 공모전 준비비 등, △간접활동비용 : 식비, 교통비 등으로 제한한 바 있습니다. 수당 사용은 클린카드(유흥업소 등에서 사용할 수 없는 카드)로 계산할 계획이었죠.

그러나 7월 신청에는 청년수당 지출 범위 제한을 풀었습니다. 왜 일까요? 서울시는 "클린카드 방식이 불편하다는 청년 의견을 수용했다. 기본적으로 청년 활동을 돕기 위한 정책이므로 제한을 두기보다 신뢰를 바탕으로 운영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고 공표했습니다.

서울시 청년정책팀 주무관에게 재차 전화를 걸어 확인했습니다. "지원금 전체에 대한 카드 명세서나 현금 영수증을 제출하지 않아도 된다"고 답이 돌아왔습니다. 돈의 사용처를 전혀 확인하지 않겠다는 뜻인데, 청년의 도덕적 해이를 줄일 대책 보강은 필요해 보였습니다.
청년 수당 온라인 신청 접수를 마친 화면.
청년 수당 온라인 신청 접수를 마친 화면.
지난 15일 일주일 준비 끝에 전 씨와 지원서 제출을 마쳤습니다. 청년수당을 둘러싼 우려 한가지를 토로했습니다.

"매달 청년에게 돈을 쥐어주면 근본적인 취업난 문제가 오히려 수면 아래로 가라앉지 않을까요. (취업난이) 개인 문제가 아니라고 말하면 '옛날에는 청년수당도 없었어, 돈 받아놓고 왜 그래?'라는 핀잔을 들을 거 같아요."

청년수당 최종 신청자는 6309명으로 집계됐습니다. 지원 대상자인 3000명의 2.1배였습니다. 서울시 청년정책팀 주무관은 "첫날(4일) 232명을 시작으로 14일 1124명, 15일 2568명 등 신청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마지막 날인 15일 지원자가 한꺼번에 몰리면서 서버가 다운돼 30분가량 접수 장애까지 일어났다. 결국 마감 시간을 오후 10시로 4시간 연장했다"고 말했습니다.

열악한 수입 상황과 암담한 미래를 기술한 '자기 반성문'들과 함께 복잡한 서류 제출 과정을 마친 청년들입니다. 최종 청년수당 신청자 평균 나이는 만 26.4세, 미취업기간은 평균 19.4개월(1년 7개월)이었습니다. 가구 건강보험 평균 납부액은 직장 8만3011원, 지역 7만920원이었습니다. 가구 소득으로 따지면 직장가입자 268만원, 지역가입자 207만원에 해당합니다. 가정과 자식을 뒷바라지하는 부모의 소득이 200만원 대에 불과하다는 뜻입니다.

'N포세대(3포(연애, 결혼, 출산)와 5포(3포에 내집 마련, 인간관계 추가)를 넘어 꿈, 희망 등 삶의 가치를 포기하는 20~30대 세대)' 현실은 또 드러났습니다.

신청자들은 '취업'을 주 활동계획으로 적었습니다. 어학원 수강, 자격증 취득, 취업 관련 시험공부 등을 사용처로 적었습니다. 그저 먹고 살기 위한 취업을 걱정하는 청년이 더 많았습니다.
[청년 표류기] '하는건지 마는건지' 청년수당 신청해봤습니다
그러나 전 씨의 청년 수당 2차 도전도 물거품이 될 전망입니다. 보건복지부가 다시 제동을 걸었습니다. 즉시 청년 수당 사업 중단을 요청하는 시정 명령을 내릴 방침입니다. 서울시가 청년 수당 부정 사용을 막을 대안을 충분히 마련하지 못했다는 이유에서입니다. 다음 달 첫 수당 지급도 무산될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정부도, 서울시도 소송을 불사할 입장입니다.

서울시-정부 간 정책 공조가 수차례 삐걱거린 사이, 전 씨처럼 청년수당으로 삶의 돌파구를 마련코자 기대했던 청년들은 다시 맥이 빠졌습니다. 툭하면 거짓말을 일삼던 '양치기 소년'처럼, 서울시 정부 그 누구도 믿기 힘들다는 하소연이 나옵니다.

청년수당 재무산 가능성 소식을 접한 전 씨는 덤덤하게 말했습니다.

"뭐 어쩔 수 없죠. 사실 처음부터 별로 기대하지도 않았어요. 저보다 힘든 친구들도 많은데.."
[청년 표류기] '하는건지 마는건지' 청년수당 신청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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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김민성 기자 / 연구=김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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