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자산' 정말로 '안전'할까?
세계적으로 주식시장에 대한 불안감이 고조되면서 금 엔화 채권 등과 같은 세칭 ‘안전자산’에 돈이 몰리고 있다. 하지만 이들 자산이 과연 ‘안전한 자산’일지는 의문이다. 통상 안전자산은 주식에 비해 변동성이 낮고 꾸준한 가치를 유지하는 자산을 뜻하지만 실제로는 변동성이 높고 가격 흐름도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채무불이행 위험이 적어 위기 땐 안전판 역할을 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무리하게 투자하다가는 의외로 큰 손실을 볼 가능성이 있다.

변동성, S&P500보다 높았다
버핏 "금값 변동, 정크본드만큼 변덕스럽다"


12일(현지시간) 뉴욕상품거래소에서 금 가격은 온스(28.35g)당 8.4달러(0.7%) 떨어진 1239.4달러에 마감했다. 소폭 하락했지만 주간 기준으로는 7.1% 급등하면서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8년 12월(9.1%) 이후 주간 상승폭이 가장 컸다. 한국 시장에서도 가격 상승에 따른 투자자들의 관심 확대로 거래량이 크게 늘어났다. 코스닥지수가 6.06% 폭락한 12일 KRX금시장 거래량은 5만6672g을 기록, 이틀 연속 역대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안전자산' 정말로 '안전'할까?
하지만 금값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 위기를 겪을 때마다 주식보다 변동성이 더 큰 것으로 드러났다. 2009년 금값은 온스당 최저 809.60달러에서 최고 1227.50달러까지 널뛰었다. 변동폭이 51.61%에 달했다.

세계적으로 경기가 부진했던 2013년에는 최저 1179.40달러에서 최고 1697.80까지 43.95% 폭을 오갔다. 대신증권 분석에 따르면 2012년 이후 지난해를 제외한 3년간 금의 연간 가격 변동성은 S&P500지수 변동성을 뛰어넘은 것으로 파악됐다. 2013년에는 안전자산이라는 금 가격 변동성(하루 수익률의 표준편차, 20.73)이 글로벌 최우량 주식들을 모아놓은 S&P500(11.35)이나 선진국 증시(독일 닥스지수 변동성 14.7)는 물론 신흥국 증시인 중국 상하이종합지수(19.16)보다도 컸다. 요즘 금값이 많이 뛰었다고는 하지만 2011년 9월 온스당 1900.2달러까지 치솟은 점을 고려하면 여전히 35% 넘게 떨어진 상태다. 워런 버핏 벅셔해서웨이 회장이 틈 날 때마다 “금은 정크본드(투기등급 채권)만큼이나 가격 움직임이 변덕스럽다”고 꼬집는 이유다.

국내 전문가들의 시선도 비슷하다. 홍성기 삼성선물 연구원은 “금은 하루 가격 변동폭이 매우 커서 안전자산이라 부르기 어렵고 최근 가격 변동도 투기적 매수세의 영향에 따른 것”이라며 “금을 주가 하락에 대한 방어자산으로 접근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안전자산' 정말로 '안전'할까?
엔화 가치, 불과 4년 만에 반토막
"환율 예측은 불가능…단기 베팅땐 낭패"


일본은행(BOJ)의 마이너스 금리 도입 발표 이후 가파르게 진행된 엔화 강세 때문에 엔화자산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이 또한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라는 지적이다.

전문가들도 쉽게 예측하지 못하는 외환시장에 일반인들이 과감하게 베팅하는 것은 도박에 가깝다는 것. 시장이나 정책에 큰 변화가 생길 때마다 엔·달러 환율은 요동을 쳤다. 12일 환율은 달러당 112.86엔. 2011년 최저 환율과 비교하면 엔화가치는 4년3개월 만에 49.4%나 추락한 것이다.

2007년 달러당 120엔을 넘나들던 엔화는 2008년 9월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엔 80엔대로 상승했다. 동일본 대지진 사태가 발생한 2011년에는 75.54엔(11월4일)까지 급등했다. 하지만 2012년 이후 일본 정부가 엔저(低) 가속화를 노린 ‘아베노믹스’를 대대적으로 펼치면서 추락하기 시작해 지난해 6월 초엔 달러당 125.86엔까지 떨어졌다. 그러다가 최근 글로벌 양적 완화와 확장적 통화정책에 대한 의구심이 일면서 엔화는 다시 강세로 돌아섰다. 하지만 최근 5년만 보더라도 기간 내 등락폭이 워낙 큰 만큼 단기적으로 환율 움직임을 점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지적이다.

조윤남 대신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환(換)은 언제든 시장 예상과 반대로 움직일 가능성이 있다”며 “단기 전망에 베팅하다가는 큰 낭패를 보기 쉽다”고 말했다.
'안전자산' 정말로 '안전'할까?
국채값 상승, 원화 약세 땐 제자리
"가격이 계속 오르기만 하는 자산은 없다"


한국 채권시장도 ‘무풍지대’가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가격이 오르기만 하는 자산은 없다는 이유에서다. 채권에 돈이 몰리면서 ‘가장 안전한’ 자산이라는 국고채 가격이 연일 사상 최고(사상 최저 금리)로 상승하고 있지만 그 반대의 하강 압력도 커지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추가 가격 상승 기대가 낮아진 상황에서 연 1.5%도 안 되는 낮은 이자수익에 만족할 투자자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신흥국 국채라는 한계도 크다. 한국 경제의 재정건전성 덕분에 무디스로부터 역대 최고인 ‘Aa2’(투자등급 10단계 중 세 번째) 신용등급을 받고 있지만 원화가치가 떨어질 경우가 문제다.

원화 약세가 언제든 외국인 투자자금 이탈과 국고채 가격 급락을 가져올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공동락 코리아에셋투자증권 연구원은 “채권 고평가 부담이 명백한 상황에서 원화가치 하락 위험이 높아지면 국내 채권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는 외국인의 이탈을 자극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동욱/이태호/민지혜 기자 kimdw@hankyung.com